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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의 여성독립운동가 임봉선

20150816일 (일) 16:3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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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역사적인 광복을 이루어낸 지 70년이 흘렀다. 지난 14일은 토요일인 광복절을 대신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 2월 8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3·1 운동을 시작으로 대구 곳곳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 23세의 젊은 나이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이 있었다. 바로 칠곡 출생의 임봉선 지사(1897~1923)이다.
 

 

1919년 3월 8일은 서문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던 날이다. 서문시장 독립만세운동의 계획은 경상도 독립만세운동의 연락책임자였던 이갑성이 대구에 내려와, 제일교회에서 이만집, 이상백, 백남채 등과 만나 국내외의 정세를 설명하면서 시작되었다. 거사는 이만집 목사가 주도하여 서문시장에서 토요일 장날인 3월 8일 오후 1시로 정하고, 이 사실을 남산교회, 제일교회, 서문교회와 성경학당, 계성, 대구고보, 신명여학교 등에 전파시켰다.
 

지금의 신명고등학교인 당시 신명여학교 교사였던 임봉선 지사는 평소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찬성하고 있었다. 마침 자신을 찾아온 김무생, 박제원으로부터 서울과 평양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때의 여성의 활약상을 전해 듣고, 그녀도 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3월 8일 오후 3시경, 서문시장에 모인 시위대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현재 현대백화점이 위치한 당시 달성군청까지 행진했다. 임봉선 지사는 머리띠를 두르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50여 명의 신명여학교 학생들을 이끌었다. 그녀와 학생들은 시장에 나아가,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합세하여 시가지를 행진했다. 그녀는 시위군중과 함께 경찰서 앞의 제지선을 뚫고 중앙파출소를 돌아 달성군청 앞의 삼각지에 이르렀다.
 

달성군청 앞에서 6대의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대기 중이던 일본군 80연대와 대치하게 되어 행진을 정지하게 되었다. 일본군과 헌병, 경찰은 시위대열로 뛰어들어 무자비하게 시위군중을 구타하며 검거하기 시작했다. 이때 현장에서 많은 시위군중이 체포되었는데, 그녀도 함께 체포되었다.
 

 

4월 18일, 임봉선 지사는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정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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