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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표정을 불어넣는 예술가

[인터뷰 공감] 예술가 윤광웅

20150907일 (월) 11:11 입력 20151109일 (월) 14: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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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정동에 작은 공방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윤광웅 씨의 별명은 바바트. 20대 때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만든 이름이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팝아트’에 광웅 씨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밥’을 붙여 만들었다. 밥처럼 예술도 가깝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한다.

 

 

 

“처음 사귄 친구들은 동네 꼬마였어요.”

 

부산 출생인 광웅 씨가 대구에 온 것은 6년 전. 지금의 터에 자리를 잡은 것은 4년이 되었다. 처음 공방을 열었을 때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였다. 물건을 팔기 위한 장소도 아니다 보니 문이 닫혀 있는 날도 많았다. 선뜻 들어오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은 거침없이 들어와 처음 보는 물건들을 구경하며 놀았다. 그래서 광웅 씨가 자리를 잡은 후 처음 사귄 친구는 동네 꼬마들이라고 한다. 공방을 찾는 아이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하다. 광웅 씨는 중·고등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때도 있었다. 그 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지금 공방에서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7년 정도 선생님으로서 생활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기획해서 형태로 만들고 발표한 후 사람들의 반응까지 보는 과정 즉 전시가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막상 해보니 미술 수업 시간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지금 공방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수업하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아이들이 정하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정도이다.”


어렸을 적 광웅 씨의 꿈은 만화가였다. 육 남매의 다섯째 딸인 광웅 씨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비 오는 날이면 창문을 내다보고 놀았다. 사과 하나를 보아도 그저 빨간색이 아닌 여러 가지 색깔이 보였다. 친구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 만화를 그려주고는 했다. 정규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2학년 때였다.


“다른 꿈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예쁘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한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왜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잘한 것 같다.”

 

벽화부터 애니메이션 제작까지

 

처음 대구에 온 광웅 씨는 방천 시장에서 작은 자리를 얻고 활동을 시작했다. 방천 시장 입주 예술가들 사이에서 한창이던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벽화를 그렸다. 지금 대구의 손꼽히는 관광지가 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벽화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지금 너무나 유명해진 그녀의 벽화는 이틀 만에 그린 그림이다. 사실 광웅 씨는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사업을 좋게 보지 않았다. 故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랐던 광웅 씨에게 김광석을 좋아하기는커녕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광웅 씨는 ‘이렇게 유명해질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애착을 가지고 그렸을 텐데’라며 웃었다.


“이 그림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 나의 특징을 잘 드러낸 그림인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김광석 씨를 생각했을 때 김광석 씨가 빛나는 한순간을 살다 간 것처럼 느껴져서 이렇게 그렸다.”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광웅 씨는 단편 애니메이션의 감독이기도 하다. 대구로 오기 전, 5년 정도 서울에서 활동했던 광웅 씨는 영화진흥회에서 당시 진행했던 공모전에 참가했다. 손수 시나리오와 콘티, 캐릭터를 짜고 클레이(점토)로 인형을 만들어 촬영했다. 애니메이션의 이름은 <환영해>. 말 그대로 환영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환영의 바다(海)라는 뜻이기도 하다. 부산에서는 ‘보일러’라는 예술 잡지를 3년간 만들었다. 미술, 음악 등 예술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잡지였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 함지공원에서 열리는 토요반짝예술시장은 광웅 씨와 의견을 함께한 몇몇이 모여 만든 예술 시장이다. 광웅 씨가 방천 시장에서 참여했던 반짝 시장 이야기를 들은 노을 공방의 조경희 씨가 흥미를 느껴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처음 열린 행사는 만든 것을 보여주고 그림을 그려주는 등 작게 이루어졌다. 행사가 이어지다 보니 구성원들에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고, 관공서 지원을 받는 등 규모가 커지면서 광웅 씨는 운영진에서 물러섰다.


젊은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방천 시장 안에서만 작업실을 세 번 옮겼다. 지금도 새로운 작업실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방천시장에서 활동할 때 시에서 적지 않은 지원금이 나왔는데, 그것이 정말 좋은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기보다 대부분 유명세를 만들기 위해 쓰인다고 생각했다. 예술을 정말 사랑하기보다 상업적인 의도가 강한 사람들을 통해 염증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금도 활동을 통해 이익을 내기보다는 유지를 하는 수준이다.”

 

 

 

광웅 씨의 작품에는 해학미가 있다. 공방 내 광웅 씨의 작품들은 대부분 표정이 있었다. 즉흥적으로 작품에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부처님의 은은한 미소를 닮은 ‘염화미소’이다.


책 작업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활동했던 것들과 작업을 통해 나온 결과물들을 내용으로 담을 예정이다. 작업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형태로 남기고 싶다는 광웅 씨의 목표는 언젠가 그녀의 작품을 전시해놓고 방문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바바트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 나는 대표할 수 있는 경향을 찾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관심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해볼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가장 마음에 드는 형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형태로 남기고 싶다.”

 

정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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