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아파트가 즐비한 우리 지역이지만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논밭이 펼쳐진 농촌 풍경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도남동은 사방이 산과 들로 둘러싸여 아직도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도남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재미난 곳이 나타난다. 바로 도자기를 만드는 ‘흙 굽는 마을’이다.
지난 수요일, 인터뷰를 위해 ‘흙 굽는 마을’을 찾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풍경을 마주하고 마당에 놓인 탁자에서 차를 마시며 이영식 대표와 운치 있는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영식 대표는 58년생으로 올해 58세, 흔히 말하는 58년 개띠다. 2000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도자기와 함께 생활했으니 벌써 16년째다.
이 대표가 도자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도자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37년이나 지난 까마득한 이야기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이내 도자기를 손에서 놓았다고 한다. 사회생활과 결혼, 육아를 거치면서 20년 가까이 공백 기간이 있었다.
“오랫동안 손에서 놓았지만,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43살이 돼서 막상 다시 시작하니 너무 재밌었다. 흙을 빚다 보면 밤새는 경우도 많았을 만큼 빠져들었다. 그 맛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지금 ‘흙 굽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그 당시 남편과 함께 마련했다. 처음엔 지금 숙소로 쓰고 있는 작은 건물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옆에 있던 큰 축사를 개조해 단체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흙 굽는 마을’에 들어서면 도자기 굽는 곳이라기보다는 정원이 있는 농장이 더 어울린다. 하지만 역시 구석구석 살펴보면 도자기로 만든 소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흙 굽는 마을’은 사실 우리 지역에서 이미 많이 알려진 명소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체험 수업을 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됐다.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당시 인근의 도남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도자기 체험교육을 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했는데 어떤 날은 한 번에 수백 명의 학생이 찾을 만큼 북적거렸다고 한다. 지금도 인터넷 등을 통해 사전 신청을 받고 체험 수업을 열고 있는데 찾는 이들이 많다.
이 대표에게 오랜 기간 도자기를 만들면서 느낀 도예의 장점을 물어봤다.
“무엇보다 그릇을 빚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고 스스로 힐링이 되는 것 같다. 거기다가 오랜 시간 작업한 작품을 굽다 보면 깨져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한 달 정도 힘들여 만들었는데 깨지면 정말 힘이 빠진다. 하지만 다시 이를 딛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참고 견디는 인내도 많이 배우게 된다. 가마에서 구울 때도 마찬가지다 10시간 이상 불 조절하며 지켜봐야 하는데 모두가 인고의 시간이다.”
반면에 작품이 생각처럼 잘 안 만들어질 때는 힘들다고 한다. 그럴 때면 집을 나서 산책을 많이 한다. 산책을 하다가 이것저것 보고 느끼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다시 돌아와서 그 생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모아놓은 전시실을 보니 여느 도자기 전시장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호롱불, 창살, 고무신 등 도자기로 이런 것도 만드는구나 싶은 것들이다.
흙 굽는 마을은 회원강습과 일일체험 교육을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성인 회원은 7명 남짓이다. 시간 날 때 언제나 들러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초보의 경우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대략 6개월 정도 배우면 일반적인 생활도자기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도자기 체험의 경우 미리 전화로 신청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 평일에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오고 개인 신청자들은 주말에 몰린다고 한다. 어른 1만 원, 어린이 9천 원이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보고 굽는 것까지 가능하다. 체험하고 말린 뒤 이를 구워 도자기로 만들 때까지는 20일 정도가 걸린다. 요즘은 특히 커플들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요즘 도예 관련 여건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일본의 경우 TV에 도자기 프로그램이 고정 편성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갈수록 그 저변이 좁아지고 있다. 실례로 대구와 그 인근 대학에서는 도자기 관련 학과 자체가 사라졌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작가 양성도 이루어지지 않고 기존 작가들 또한 도자기만으로는 만만치 않다.”라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이 대표의 꿈은 도자기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면서 더 절실한 꿈이 됐다. 누구나 쉽게 찾아와서 도자기를 빚는 법을 배우고 도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흙을 빚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게 참 보람 있고 자신이 잘하는 일이라며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이 대표는 여기에 당장 하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환갑을 맞는 내후년쯤 오랜만에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흙 굽는 마을이 문을 열었던 초기만 해도 여러 기회를 통해 작품 전시회를 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주로 가르치는 일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오랫동안 열지 못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고 정원과 농장을 둘러보는데 감나무, 모과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가을에 열리는 이들 열매처럼 ‘흙 굽는 마을’이 앞으로 수많은 도예가를 배출하는 커다란 나무 같은 도자기학교가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 싶었다.
강북신문 김지형 기자
earth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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