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동의 한 음식점에서는 10년 가까이 토요 무료급식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음식점의 대표 김신애(57세) 씨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지역 어디라도 찾아가는 자원봉사자다.
▲ 김신애 씨가 아들 민 용 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 한 달에 한 번 무료급식 열어
김신애 씨가 운영하는 구암동의 한 가게에서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면 식당이 어르신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토요 무료 급식 때문이다.
김 씨가 가게 문을 연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사실 가게를 열기 전 김 씨는 제법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했던 두 아들이 독립을 하자 찾아온 우울증은 김 씨를 괴롭혔다. 이 우울증 때문에 시작한 음식점은 그녀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운동을 했었는데, 운동을 하면 보호자의 보살핌이 많이 필요하니까 매일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돌보았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만 쫓아다니다가 갑자기 아이들이 독립을 하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되니 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왔다. 친구도 없었고, 거의 한 달 동안 집에서 울기만 했다. 그러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식당을 운영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김 씨의 무료 급식은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 김 씨는 음식점을 운영하기 전부터 이곳저곳에 봉사 활동을 다녔는데, 장사를 시작하면서 더 이상 봉사활동을 가기 힘들어지자 자신의 가게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무료 급식 행사 때마다 찾아오는 사람은 약 30명. 120~130명이 찾던 처음보다는 많이 줄어든 숫자다. 무료 급식을 시행한 지 어느덧 6년, 햇수가 제법 길어지자 단골손님도 많아졌다. 하지만 행사를 시작한 초기에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무료 급식을 시작한 초반에 음식을 드시러 온 어르신 한 분이 수저를 가져다 달라고 하셨는데, 그때 손도 부족하고 바빠서 죄송하지만 갖다 드시라고 했더니 덜컥 ‘그것도 안 갖다 주면서 무슨 봉사를 하냐’면서 화를 내셨다. 처음에는 나도 인간이다 보니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분들에게 오히려 더 잘해주니 어르신들도 반대로 미안해하고 더 고마워하더라. 이때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간 어르신들이 훗날 ‘여기 진짜 맛있다’면서 지인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다.”
이 무료 급식은 대부분 김 씨의 사비로 이루어진다. 후원자는 단 한 명.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무료 급식이지만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혀 고민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당초 매주 열리던 토요 무료 급식은 지난해 격주로, 두 달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었다. 구분 없이 모두에게 나누어주던 식사는 이제 독거노인,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으로 대상이 줄었다.
“처음에는 대상 구분 없이 들어와서 점심을 드시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실내다 보니 들어오기가 꺼려질 수도 있는데, 누구나 쉽게 들어와서 편하게 먹고 가길 바랐다. 매주 무료 급식을 할 때는 목요일까지 매상이 잘 안 나오면 혼자서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러다 두 달 전부터 업종을 갈비탕으로 바꾸다 보니 재료 값이 늘어났고 비용 부담이 커져서 일자와 대상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담도 있지만 우리 가게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후원자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무료 급식을 운영하고 있다.”
■ 봉사를 통해 시작된 두 번째 삶
김신애 씨는 봉사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씨는 무료 급식을 하기 전부터 연탄 배달 봉사, 달성공원 무료 급식 봉사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펼쳤다. 이렇게 김 씨는 약 20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해왔다. 봉사에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어릴 때부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봉사 활동을 꾸준히 다니게 되었고, 점점 들이는 시간과 비용도 커졌다.
지금은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닌 웃음치료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6년 전 처음 웃음치료 봉사를 접한 김 씨는 좀 더 전문적으로 웃음치료를 배우고 싶어서 3년 전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은 총 네 군데의 복지관을 다니면서 웃음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3년간 새볕원을 후원하면서 매주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보냈고, 작년부터는 실버빌도 후원하고 있다.
이렇게 김 씨가 끊임없이 봉사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고 온다고 말한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봉사를 하면서 에너지를 느낀다. 봉사 활동하는 시간만큼은 내가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고 이것이 내 일상에 활력소가 된다. 특히 돌보아 드리던 어르신이 편찮으시다가 건강을 회복하시는 모습을 보면 큰 뿌듯함을 느낀다.”
김 씨의 목표는 요양원을 짓는 것. 힘닿는 데까지 봉사 활동을 이어가다가 모두가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요양원을 짓는 것이 김 씨의 꿈이다.
“나이가 들면 다들 요양원에 가야 하는데, 사실 혼자 요양원에 간다는 것이 외로운 일 아니냐. 언젠가 어르신들이 지인들과 함께 텃밭도 가꾸면서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요양원을 짓고 싶다.”
정은빈 기자
이시간 최신뉴스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