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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중심에서 우뚝 선 무소속 홍의락 ‘예상된 이변’

20160414일 (목) 00:21 입력 20160414일 (목) 03: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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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여다야(一與多野) 구조의 악조건 속에서 야권 성향의 무소속 홍의락 후보가 당선되었다.  

 

홍의락 후보는 지난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후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 강북 지역으로 내려와 힘든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대구·경북의 유일한 야당 국회의원으로 시선을 끌었다. 민주당계 정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이 대구·경북에서 지역위원장을 맡은 것은 1985년 신민당 유성환 의원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이후 30여 년만의 일이었다.

 

 


앞서, 홍 후보는 경상북도 봉화의 시골 ‘산수유 띠띠미마을’에서 교사 아버지와 시골아낙 어머니 아래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대구 계성중·고등학교로 진학해 유년기를 보냈다. 평범한 대구 소년이던 홍 후보는 약 40여 년이 흐른 지금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국회의원으로 성장했다.


그의 정치 생활은 2003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앞서 홍 후보는 2003년 열린우리당이 창당하면서 경북도지부 부지부장 겸 대변인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통합민주당과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을 거쳐,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경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지난 4년간 홍 후보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자 북구을 지역위원장, 그리고 예결특위 위원으로서 △ 구암동 고분군 복원 발굴, 함지산 일대 관광자원화(20억 원) △ 팔거천, 동화천 물길살리기(323억 원) △학교안전예산(매천초 10억4천만 원, 관천중 8억5천만 원) △팔달육교 리모델링(7억 원) △운암지 산책로 확장(7억 원) 등 예산을 확보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 지역 내 이름을 알렸다.

 

 


이러한 홍 후보의 정치 활동 뒤에는 아내 김진란 여사가 있었다. 김진란 여사의 ‘눈물 내조’는 최근 언론을 통해 조명되기도 했다. 사실 김 여사는 지난 2010년 홍 후보의 경북도지사 선거 당시 선거캠프에 단 한 번도 안 갔을 정도로 남편의 출마를 반대했고 대구에서의 재도전 역시 처음엔 반대를 했지만, 후회 없는 남편의 선택을 위해 4년 전 북구 구암동에 살림을 새로 차리면서 본격적으로 내조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 4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총 130여 곳의 경로당을 방문하고 봉사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선거판에서 정책과 공략 중심의 후보 검증은 실종되었고 ‘흑색 선전’과 ‘상대방 흠집내기’, 그리고 연이은 사죄가 난무했다. 이에 대해 지역 유권자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변화를 갈구했다. 이로 인한 결과인 걸까, 이번 총선은 ‘대구에서는 새누리당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을 깼고, 새누리당뿐이던 대구에 야당과 무소속이 더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대구 시민들의 정치 의식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 후보는 더 이상 작은 정치인이 아니다. 전국의 이목을 끄는 우리 지역의 국회의원으로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북구을 지역을 위해 어떤 일들을 이루어낼지, 대구 북구을을 위한 힘찬 첫 발걸음은 어떻게 시작할지,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정치사에 어떤 그림을 그려 넣을지 등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낙선한 후보와 지지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고, 지역주의를 타파한 주민들의 결속과 당파를 떠난 화합과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4월 13일, 일명 ‘고담 대구’라 불리던 우리 지역이 진정한 컬러풀(Colorful) 대구를 향해 첫 발을 내딛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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