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시민사회 길들이기가 본격화됐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9월 8일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폐지령안 논의 즉각 중단하라> 제하의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가 시민사회와의 소통·협력 대신 길들이기에 나섰다고 성토했다.
앞서, 국무총리비서실(아래 총리비서실)는 9월 1일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들과 장·차관급 중앙행정기관장 등에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 폐지령안 의견 조회’ 공문을 보내고, 일주일 뒤인 7일에는 입법예고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총리비서실이 각 기관에 내려보낸 공문에는 “검토의견 회신 기한인 9월 8일까지 회신이 없는 경우 이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처리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함께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총리비서실이 이 폐지령안에 대한 입법예고 의견 접수 기간을 불과 열흘뿐인 16일까지로 정한 것으로 알려지자,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 단체는 “시민사회와 제대로 된 소통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폐지 논의는 윤석열 정부가 시민사회 활성화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지적하고, “특히, 총리비서실은 이 같은 논란을 예상했던지 각 기관에 공문을 비공개로 보냈고, 현행 규정 상 거쳐야 할 시민사회위원회의 심의도 없었다”며 “이는 행정절차를 위반하는 위법적 행태가 아닐 수 없기에, 총리비서실은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폐지령안 논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폭우·태풍 틈타 시민사회 길들이기 시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은 지난 2020년 5월 시민사회와 정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숙의한 끝에 만들어졌다. 이 규정에 따라 2021년 11월에는 범정부적 차원에서 ‘제1차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 기본계획(2022∼2024)’이 발표됐고, 또 지난 4월에는 국무총리 산하 시민사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관련 시행계획까지 발표된 바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 규정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숙의 과정을 무시한 채 다시 시민사회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총리비서실의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폐지 논의는 내용과 절차 모두에서 부적절하고 위법하다”며 “총리비서실이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폐지령안 논의를 시민사회위원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고, 이 규정을 폐지해야 할 최소한의 근거조차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 자체로 이미 규정을 어겼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총리비서실은 자치단체장들과 중앙행정기관장들에게 이 안에 대한 의견 조회 기한을 단 1주일인 9월 8일까지로 뒀고, 입법예고 의견 접수 기간도 열흘 밖에 되지 않는다”며 “특히, 이 기간은 100년만의 집중호우와 역대급 태풍인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한 때였지만, 국무총리는 피해복구는 뒷전인 채 시민사회와의 소통ㆍ협력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틀조차 없애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명박근혜에 이어 윤석열 정부도 시민사회 갈라치기
시민사회 길들이기는 이명박근혜 정부 때에도 늘상 있어왔는데, 이 당시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건전 단체와의 소통 및 활동영역 확대 지원' 운운하며 시민사회단체들을 블랙·화이트리스트로 지원 대상을 나누고, 정부 정책들에 문제 제기해 온 단체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의 목적과 기본 원칙에 담겨 있는 시민사회의 자율성·다양성·독립성·공익성 등의 가치를 존중해 국정을 위한 소통과 협력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 ‘정권 유지’라는 협소한 시각에 갇혀 시민사회단체를 길들이려 한다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지적했다.
특히,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시민사회와 정부의 거버넌스와 시민참여를 통한 정책 결정 및 행정 과정은 이제 현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라고 못박고, “민주주의가 앞서 발전한 나라들에서도 시민사회와 정부가 함께 거버넌스 틀을 구축해 서로 소통하면서 견제하기도, 협력하기도 한다. 이 같은 갈등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시민사회와 정부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해야 절차적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더구나 코로나19 등 전염병 대유행, 기후위기, 인구절벽, 지역소멸 등 국내외뿐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정부와 시민사회의가 소통과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시대적 과제들의 대안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윤석열 정부는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과 시민사회위원회의 폐지 논의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오히려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에 근거해 논의되고 수립된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조속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나아가 지난 20대 국회의 ‘공익증진을 위한 시민사회발전 기본법안’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위한 기본법안」 등 시민사회 활성화와 발전을 위한 법제도 논의에 나서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는 한국 사회를 온통 반정부·친정부세력으로 갈라치며 불통으로 일관하던 이명박근혜 정부가 실질적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제도적 민주주의조차 후퇴시킨 역사적 사실을 결코 잊지 말기 바란다”라고 경고했다.
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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