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사세요(함께 사는 세상이요 1)-기무사 계엄령 준비사건
2018년 07월 23일 (월) 15:51 입력 2018년 07월 23일 (월) 15:52 수정
국군 기무사령부의 ‘계엄령 준비 사건’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하는 점은 평화적 촛불혁명의 과제 완수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중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동시에 이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사건을 성역없이 엄정하게 처리하고 이같은 일이 다시는 재발 않도록 제도 및 인식개선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증대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는 역사적 과제다.
- 지난해 3월 촛불집회 당시 기무사가 계엄령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려 했던 계획이 드러났다. 사진은 촛불집회 장면.
<사진출처=플리커 사이트 ‘Teddy Cross’의 포토스트림>
7월 5일 첫 문건 공개
지난 7월 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기무사 문건을 공개했다. 기무사가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내려지기 직전, 탄핵이 기각된다면 이에 불복한 국민들이 청와대와 헌재에 진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해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건은 당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한다.
다음 날인 7월 6일, 군인권센터는 필사된 문건 전문을 PDF 파일로 공개하였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0일,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이 사건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긴급지시했다. 독립 수사단은 군내 비육군, 비기무사 출신의 군검사들로 구성하고, 국방부 장관의 수사지휘도 받지 않도록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7월 16일 국방부, 기무사와 각 부대 사이에 오고 간 모든 문서와 보고를 대통령에게 즉시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세부자료 추가 공개 “충격”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20일, 청와대는 당초 이철희 의원이 공개했던 기무사의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에 딸린, 67쪽 분량의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새로 공개했다. 국방부가 전날(19일) 청와대에 제출한 이 문건은 종전 알려진 것보다 훨씬 구체적인 계엄 준비 계획을 담고 있다. 합참의 평소 매뉴얼과에도 어긋나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었다. 기무사가 계엄령을 단순히 검토만 한 게 아니라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려는 의지가 있었음을 드러낸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가히 초법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 할 이 세부계획에는 탄핵이 기각될 경우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는 광화문과 여의도에 기계화 사단과 특전사 등 전차를 동원한 중무장 병력을 투입하는 계획이 담겨있다. ‘신속한 계엄 선포 등 선제적 조치 여부가 계엄 성공의 관건이다’라는 판단에서다. 문건에는 또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작성된 '비상계엄 선포문'과 포고담화문도 실려 있었다.
국회무력화 계획도 세워
우리 헌법은 이렇다, 계엄은 대통령이 선포한다. 하지만,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계엄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번 공개된 기무사 세부계획을 보면, 헌법상 보장된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권까지 강압적으로 무력화하려 했다. 문건이 작성된 지난해 3월, 당시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여당 의원들(당시 새누리당)을 국회 표결에 불참시키고 야당 의원들을 상당수(계산상으로는 57명) 체포, 구금하면 정족수 미달로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 자체가 원천봉쇄된다. 이것이야말로 국헌문란 행위다. 내란죄에 해당한다.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언론을 통제하는 방안도 보인다. 주요 언론사에는 보도검열단을 파견해 기사를 통제하고 인터넷과 SNS를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군에서 통상 2년마다 만드는 '계엄 실무 편람'에는 전혀 없는 내용이다.
헌정파괴 쿠데타적 발상
하나같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들이다. 만약 이같은 계획이 실제로 실행됐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정치적 상황에 처해 있을까. 5.18의 광주같은 상황일까. 어쩌면 그보다 더 가공할 일이 벌어질지도.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위를 지킨다는 군에서 왜, 어쩌다 이같은 ‘계획’이 만들어졌을까.
문건을 만들 당시 기무사령관인 조현천씨는 군내 사조직 ‘알자회’ 출신이다. 조씨의 전임 사령관 이재수씨는 박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와 중앙고 동창에다 육사 37기 동기다. 이씨는 기무사 재임시 ‘세월호 태스크포스팀’을 만든 장본인이다. 이씨는 10대 때부터 박 전 대통령과 알고 지낸 사이라 한다. 이들 기무사령관은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에 독대 직보를 해왔다.
일부나마 군내 ‘정치군인’들은 나라와 정권을 구분 못한 것 같다. 시대착오도 한참 착오다. 어쩌면 이들의 평소 국가관이 민주정이 아니라 왕정식 사고방식이 젖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주권자인 국민을 지키라고 내준 총을 정권을 지키는 데 쓰려했으니 말이다.
문건 내용들을 보면 이들도 나름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의식한 듯하다. 군령권이 없는 육군참모총장이 위수령에 따른 병력 출동을 명령하는 게 불법이란 점을 알고는, 이를 우회할 방법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절차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결여된다면 이는 위법행위를 은폐하려는 획책밖에 안 된다.
엄정 수사 특단의 조치를
일부 야당의원들의 인식도 문제다. 이들은 “계엄 준비는 ‘조건부 검토’에 불과하다”거나, “문건을 아무리 뒤져도 음모는 없다”거나, “군은 국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등 사안의 핵심을 호도하기에 급급했다. 아무리 정치적 이익에 눈이 멀어도 법을 유린하는 쿠데타적 발상까지 변호하고 나서려는 작태는 한심하다.
이제 군 특별수사단은 문서들이 누구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어디까지 보고됐는지, 실제 예하부대 어디까지 전파됐는지 등 실체적 진실을 확실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묻고, 바꿀 것은 바꾸고, 없앨 것은 없애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평화적 시위에 나선 국민들을 폭도로, 종북세력으로 몰아 탱크 운운하는 따위의 ‘계획’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지금이다.
특히 불법 정치개입, 민간인 사찰에 이어, 군정 획책 계획까지 한 기무사는 해체에 준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글=전인철 주필
<알림=새 시리즈 연재합니다>
본지는 이번 173호(7월 26일자)부터 전인철 주필의 새 시리즈물 2개를 연재합니다.
9면=‘역사 속 인물 이야기’
10면=‘함사세요-함께 사는 세상이요’
전인철 주필은 25여 년 언론계에서 종사하며 우리 사회의 명암을 증언해 온 언론인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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