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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 ‘겸허함’에 대하여

함사세요(함께 사는 세상이요) 4

20180910일 (월) 13:51 입력 20180910일 (월) 13: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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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시작되는 길목입니다. 그리운 얼굴들 만나는 한가위 명절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한낮이면 아직 햇볕이 가슴골을 촉촉하게 하지만, 그래도 한여름의 맹위는 이미 저편으로 멀어져 갑니다.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따사로운 초가을의 한켠에서 우리네 마음도 한자락 두자락 고이들 접어갑니다. 당돌한 봄의 생기도, 발칙한 여름의 열기도 계면쩍은 듯, 가을은 또 속으로 속으로 영글어갑니다.



당신의 올 가을은 어떤 시간들이 될까요. 내 고향 을숙도의 키를 넘기는 무성한 갈대숲. 한줄기 바람에 일렁대는 그 내밀한 속삭임은 영원한 동경입니다. 석양의 황금빛이 아득한 여행길, 이름모를 산자락을 돌며 만나는 두 줄기 억새의 실루엣은 차라리 가슴 속 깊은 슬픔입니다. 그 길을 돌아 만나는 시골마을 초입의 늙은 감나무엔 파란 하늘을 점찍는 감알 몇 개가 까치를 기다리고 있고, 들녘엔 누런 벼들이 마지막 가을빛에 스스로를 되새깁니다. 들판에 젖줄 대느라 여름 내내 수척해진 저수지는 이제 고요히 제 물빛을 갈무리하구요.

비단 가을은 자연의 가을만이 아닐 겝니다. 가로수 노란 은행잎이 포도(鋪道)를 뒹굴면 도시의 연인들은 서로의 옷깃을 여미며, 아직 외로운 이는 어디론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합니다. 거리를 부는 가을 바람은 만나고 하나되고 부등켜 안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은 수렴의 계절입니다. 영글어 모으고 갈무리합니다. 펼치고 확산하고 방만했던 모든 것을 갈무리해서 제 '아름'이 감당할 만큼만 '한아름' 안아들고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가을은 아름답습니다. (아름은 '한아름'을 안아야지 넘치거나 모자라면 구차스럽고 추합니다. 자연은 꼭 제 아름만큼만 안습니다.)



'지금 집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이라고 시인 릴케는 이를 역설적으로 노래합니다.

릴케가 노래하듯, 인생에 있어서도 가을은 있을 겝니다. 인생연령 몇 살이 가을인지, 구태여 나이를 들먹이진 않으렵니다. 다만 체력의 절정을 지나 비록 노(老)해가는 나이 일지라도, 아직 정신적으로 쇠(衰)하지 않은 나이라고나 할까요. 나이 들어 가긴 하지만 쇠잔해지지는 않은 영혼. 수렴해 갈무리하고 숙성을 거쳐 성숙해 가는 삶.


시인은 이리 노래합니다.

'한 때는 인생을

오르기 위해 사는 거라 알았네

첩첩이 쌓아놓은 저 돌담처럼

한 때는 인생을 거저

쌓기만 하면 되는 거라 알았네

그러나 이제 우린

살아갈 세월보다

살아온 세월이 더 많은 나이

바람 속에 들꽃 피운 저 오름(제주도의 기생화산)처럼

속으로 가만히 깊어져야 할 나이'

(김재진, '오름' 전문)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시간에 대해 겸손해져가는 여정입니다. '겨울'을 알기에 다시 오는 '봄'을 희망하고,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너그러움. 비록 쓰러져가더라도 사라져 가지는 않는 자들의 넉넉함 말입니다. 그래서


'사십이 되면

더 이상 투덜대지 않겠다

이제 세상이 엉망이 이유에

내 책임도 있으니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무조건 미안하다'

(전윤호, '서른 아홉' 일부)고 읊을 수 있는 것이고,

 
'나이 마흔 넘어 세상을 산다는 건

석양 빛 붉은 울음을 제 뼛속마다 고이 개켜넣는 거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악머구리 끓듯 소란스럽지 않게

저만큼 서로 한 뼘씩

거리를 둔 채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상처의 불꽃들

밤새 안녕하였다는 눈인사를

저 스스로 묵묵히 건네며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승철, '미스터 L의 회상' 일부)고 관조하는 것입니다.

 
삶의 구비구비마다 숨결을 고르고 갈무리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지금 이 가을은 또다시 당신에게 어떤 시간들입니까. 겸허히 속으로 속으로 삭이며 거둘 것은 거두고 갈무리하는 시간들이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매'(릴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아름'만큼만 서두르십시오. 그 또한 아름다울 겝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 따사로운 햇살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일부)

 
전인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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