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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칼럼] “소중한 우리 헌법, 한 번 읽어보셨나요”

20201123일 (월) 07:18 입력 20201123일 (월) 07: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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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세요
함께사는 세상이요~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특성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언어는 유별나다. 사람은 언어를 통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이를 바탕으로 협동했기에 이만큼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회든 구성원 사이에 소통이 왜곡되고 서로의 뜻이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럴 때 언어란 그 사회를 망가트리는 큰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니 잘 살려면 말을 잘 해야 한다. 말솜씨가 뛰어나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할 말 안 할 말을 잘 가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정치영역에서 말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지대하다. 무릇 정치라는 게 말로써 하는 것인데, 정치 영역에는 항상 정치모리배가 있어 막말 거짓말 속이는 말 등 말을 마구잡이로 하며 전체 물을 흐리기 일쑤다. 동서고금 이런 자들의 뿌리는 다 뽑아낼 수 없기에, 듣는 사람들이 즉 국민들이 그런 속이는 말, 막말을 잘 가려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악행은 계속되고 있다. 정말 우리 같은 범부들로서는 누구 말이 맞는지 가려내기가 난감하다. 어제 이 사람 말이 맞는 것 같아 응원을 했는데, 오늘 그 말이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저 사람 말은 말도 안 된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속았더라는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언론이 공로을 더 흐려
더구나 요즘은 상당수 언론도 정치영역 못잖게 세상 말 흐리기를 주도하고 있다. 공론 형성에 가장 중대한 역할을 하는 언론이 헛말 거짓말 교묘한 말장난을 일삼고 있으니, 참 막막해질 때가 많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오보는 있을 수 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정정하면 일단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가짜뉴스와 왜곡보도는 얘기가 다르다. 그 사회적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언론들은 자사이기주의에 빠져서 또는 이 사회를 자기들 뜻대로 이끌 수 있다는 소영웅주의에 빠져, 국민을 기만하고 호도하기가 선을 넘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보도보다는 편파보도와 편가르기로 사회 질서와 통합을 헤치고, 이렇게 세상을 배반하는 댓가로 자기이익을 챙긴다. 공론이 왜곡되고 기만이 판치는 사회는 내부적으로 붕괴된다. 언론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약속을 안 지키면
사람은 공동체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그런데 모여 살면 그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갈등 조정을 잘 하고, 갈등을 발전의 계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회, 그렇게 언로가 잘 뚫려 소통이 원만한 사회가 건강하고 오래가는 사회가 된다. 
공동체의 건강성, 즉 협력의 기제를 마련하고 갈등을 잘 다스려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뜻을 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사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받들며,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 등에 대해 사회적 정치적 합의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합의된 사항은 갈등 조정을 위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런 사회적 합의와 동의를 가장 명료하고도 사회적 권위를 가진 형태로 명문화한 게 헌법이다. 헌법은 그런 것이다. 내가 직접 만들지 않았어도, 일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헌법이라는 사회적 계약 내지는 약속규정은 준수한다는 걸 우리는 전제하고 있다. 현행 시스템을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법률과 명령, 규칙, 조례 등이 헌법적 가치를 벗어나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개헌을 할 수는 있지만 위헌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법부의 모든 재판도 궁극적으로는 이 헌법 정신에 근거해 이뤄지기에 우리는 그 결과를 동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민주공화의 정신으로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을 볼라치면, 공론의 장을 떠도는 많은 말들이 이런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거나 이를 도외시하는 말들이다. 알고도 그러고, 자신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도 그런다. 그래서 공론장의 말들을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이를 헌법적 가치라는 거울에 비춰보면 가장 합리적이겠다. 
이제 우리 헌법 제1조를 한 번 보자. 제1조는 그 유명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선언이다. 이는 제1조 1항이고,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민주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이다. 공화국이란 왕이나 특정세력이 아닌, 전체 국민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정치체제, 즉 공화제로 운영되는 나라라는 얘기다. 그래서 왕이 있는 영국이나 일본은 입헌군주제지, 공화국이 아니다. 물론 공화국도 현실적으로는 국민이 선거로 뽑은 국민대표가 통치를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국민전체가 스스로를 통치한다는 정신이 엄연하다. 그런데 지금 공론의 장을 떠도는 말들 가운데 이 민주와 공화 정신을 벗어나는 말들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현행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이었던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에 그 근원을 둔다. 임정 제5차 개헌 이전까지도 일부 문구만 다듬어지며 그 기조는 계속 유지되다가, 1948년 첫 헌법 제정 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선언으로 자리잡는다. 우리 헌법은 지난 72년 동안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치며 아홉 차례 개정되었지만, 1조 1항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졌고, 앞으로도 크나큰 혁명적 상황이 닥치지 않는다면 계속 그러하리라 싶다. 어쨌든 현재 이 땅을 사는 우리는 이 크나큰 약속을 서로가 잘 지켜야 한다.  

다른 나라 헌법들
참고로 다른 나라들의 헌법을 한 번 살펴보자. 각국의 헌법 제1조는 그 공동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이념을 담고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이렇다. ‘미합중국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된다. 또 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안된다.’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를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민주공화국이다. 신대륙의 영국식민지 주민들이 독립전쟁, 즉 피를 흘려 본국으로부터 독립해 세운 나라다. 신앙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선언이다. 아울러 미국정치의 중심은 우리가 알고 있듯 대통령이 아니라, 연방 각 나라의 대표들 모임인 의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조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지도하고 노동동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전제정치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사회주의 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제도다.’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을 토대로 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천명하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이후 5년이 지난 1945년 9월 20일 첫 헌법이 제정됐다. 현행 헌법은 1982년 개정된 것을 골격으로 한다. 물론 부분수정은 계속 이뤄졌다. 1993년 개헌에서는 ‘중국특색사회주의 이론’을 내세워 개혁개방 속도를 냈고, 1999년 3차 개헌에서는 ‘덩샤오핑이론’을 반영해 개혁개방을 가속화한다. 2004년 4차 개헌에서는 사유재산권이 보다 강화된다. 2018년에는 시진핑 주석이 ‘국가 주석의 임기조항’을 삭제해 사실상 장기집권이 가능케 했다. 최근 일인지라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암튼 매번 헌법수정 때마다 사회 경제 정치 시스템에 대한 중국인들의 변혁 의지가 잘 드러난다.

어떤 가치가 중요할까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헌법) 제1조 제1항은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이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이다.’ 공동체 정체성보다는 인간의 존엄성 보호를 먼저 내세운다.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한 언급은 제1조가 아닌 20조에 가서야 이 나온다. 미국이나 중국보다는 관념적이고 원칙적 선언이다. 독일 국민성이 엿보인다. 그만큼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헌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 독일 헌법의 근간이 된 것은 1919년 제정된 바이마르 헌법이다. 바이마르 헌법 제1조는 1항은 ‘독일제국은 공화국이다’, 2항은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우리 헌법은 독일 헌법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혁명의 나라이자 근대민주공화국의 첫발을 디딘 프랑스의 헌법 제1장은 ‘프랑스는 불가분적, 비종교적,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없이 모든 시민은 법 앞에서 평등함을 보장한다. 프랑스는 모든 신념을 존중한다. 프랑스는 지방분권화된 조직을 갖는다’이다. 프랑스 헌법은 근대 법전의 기초가 되는 법전이자, 세계 3대 법전 중 하나인 ‘나폴레옹 법전’을 근간으로 한다. 1789년 혁명 직후 나온 ‘인권선언’에 바탕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헌법에 명문화하면서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가 공화국의 공식 이념으로 자리한다. 2003년 개헌을 통해 헌법에 지방분권의 가치를 담고, 지방정부의 자유로운 행정을 헌법으로 보장한 게 눈길을 끈다. 프랑스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과 모두가 평등한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
각국의 헌법 제1조는 그 나라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어떤 정치적 사상을 담고 있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공동체 정체성의 거울이다.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고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숱한 희생과 노력으로 얻어진 소중한 생각들을 담고 있다. 이를 장황히 살펴 본 이유는 우리 헌법의 고유성과 그 내용이 가지는 무게를 한 번 느껴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론의 장에서 횡행하는 온갖 말들을 이 헌법 가치에 비춰 살펴보고 그 진정성을 가려보자는 바람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소중한 우리 헌법을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전인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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