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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호 사회문화평론가의 <이야기 마당>

20210129일 (금) 09:3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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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는 우리말 - 말짱 도루묵이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오른 선조 임금이 처음 보는 생선을 먹게 되었다. 그 생선을 맛있게 먹은 선조가 고기의 이름을 물어보니 이라 했다. 맛에 비해 고기의 이름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선조는 그 자리에서 의 이름을 은어(銀魚)’로 고치도록 했다.

나중에 왜란이 끝나고 궁궐로 돌아온 선조가 그 생선이 생각나서 다시 먹어보니 전에 먹던 맛이 아니었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처럼 허기가 졌을 때 먹던 음식맛과 모든 것이 풍족할 때 먹는 음식맛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맛에 실망한 선조가 도로 묵이라 불러라.’ 하고 명해서 그 생선의 이름은 다시 이 될 판이었는데 얘기가 전해지는 와중에 다시를 뜻하는 도로가 붙어버려 도로묵이 되었다.

이리하여 잠시나마 은어였던 고기의 이름이 도로묵이 되어버렸고, 이것이 후대로 오면서 도루묵이 되었다. 바닷물고기인 도루묵은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민물고기인 은어와는 다른 종류다.

지금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애쓰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을 쓴다. ‘말짱 헛일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2.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

 

시인이며 평론가인 김기림은 정지용 시인을 조선 신시사상(新詩史上)에 새로운 시기를 그으려한 선구자이며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정지용은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절제된 감정과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 그리고 섬세한 언어 감각으로 빚은 시편들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정지용은 천재시인 이상의 시를 소개하고 등단시키는 역할을 했고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 청록파를 문단에 추천했다.

정지용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은평구 녹번동에서 살았을 때 녹번리에서등의 시를 발표하였는데, 한국전쟁을 전후한 그의 행적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대표적인 시 향수는 가수 조용필이 자신이 부른 곡들 중에서 가장 아끼는 노래라고 말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만든 김희갑이 작곡하고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함께 불러 널리 사랑받고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삶이 우리를 속일 때면 슬퍼하고 노여워하다가 언뜻언뜻 생각나는 곳, 현실과 싸우다가 지친 소설의 주인공이 찾아가는 곳, 나이가 들수록 더욱 기억에 새롭고 그리워지는 곳. 그곳은 바로 고향이다.

사람들은 고향을 생각할 때면 남자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여자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은 고향이 아버지(어머니)와 닮았기 때문이다. 고향과 아버지(어머니)는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닮았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나를 있게 한 것도 고향이고 나를 키워준 것도 고향이다. 고향과 아버지(어머니)는 모두 내 존재의 근원이다. 그래서 고향은 아버지(어머니)와 닮았다.

인간은 고향을 떠나야만 한다. 고향을 떠나는 것은 유년시대를 마감하고 성인으로 자립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인간의 유아의식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유년의 자아를 형성한 고향을 부정하는 방법은 고향을 떠나는 것이다. 자기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을 운명이라는 점에서 고향은 또 아버지(어머니)와 닮았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키워준 고향을 버림으로써 정신적 성숙을 이루고 나면 자기가 버린 고향을 다시 그리워한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성인이 된 자아가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또다시 정신적 성숙을 이루는 것이다. 자신이 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순된 행위가 바로 향수(鄕愁)의 본질이다.

고향을 떠난 자아는 현실에 적응하고 아버지(어머니)로부터 멀어지는 듯이 보이지만 그는 점차 아버지(어머니)가 되어간다. 아버지(어머니)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버지(어머니)에게로 가는 길이었다는 역설은 고향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성립한다. 고향을 버리고 현실을 찾아간 자아는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시 고향을 찾게 된다. 결국 자아는 고향을 다시 찾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는 셈이다. 이것이 고향과 아버지(어머니)가 세 번째로 닮은 점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을 거치며 시인으로서 시대의 아픔과 고난을 예민하고 격렬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정지용(정지용이 1946년에 결성된 문학가 모임에 가입했을 때 형사들이 집으로 자주 찾아와서 근황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달래주는 향수를 지은 시인 정지용은 전쟁의 와중에서 행방불명되었다.

 

 

3. 김장을 하며

 

우리 가족은 연말에 김장을 할 때 외갓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서 합니다. 노동착취를 당하는 가족 수가 외할머니부터 6학년 동생까지 총 49명입니다. 어머니가 7남매거든요. 4년 전 그날도 김장을 담그러 외갓집에 모두 모였죠. 첫날은 온 가족이 동원돼 한가지 일만 합니다. 엄청난 양의 마늘을 까는 거죠. 그것도 49명이 모두 들어가서 마늘을 깔 수 있는 아주 큰 황토방에서요. 그날도 마늘을 까고 있었습니다. 외할머니만 좋아하는,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은 마늘까기에만 전념했어요.

까는 속도가 이거시 뭐이냐! 다 안 까믄 방에서 못 나갈 줄 알아!”

외할머니는 언행이 거친 편이십니다. 가족은 화장실도 못 간다는 협박을 듣고서는 손에 모터를 단 듯 미친 듯이 마늘을 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누군지 확인하려 했지만 창문도 없고 할머니는 가는귀가 먹으셔서 잘 듣지도 못하시는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갑지가 하면서 정전이 됐습니다.

워메, 시방 뭐 쓰잘데기 없는 전기를 뭐한답시고 겁나게 쓰브러갓고 정전이 되어븐다냐?”

아이구, 어머니, 가끔 이러잖아요. 조금만 기다리셔요.”

모든 가족이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토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누가 화장실이 급해서 뛰쳐나갔나 보다 했는데, 누군가가 !”라고 외치더군요.

불은 켜졌습니다. 우리 가족은 정말 놀랐습니다. 토방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복면을 이마 위로 올리고 가방과 칼을 든 도둑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움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49명이 모두 칼을 들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도둑은 경악하더군요. 외할머니가 먼저 나서시더라구요.

뭐여? 한전에서 왔슈?”

우리는 피식피식 웃었고 할머니는 사람을 제대로 보시고서야 도둑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너 도둑이지? 맞지? 왐마, 니가 오늘 도둑질이 처음이로구마! 죽을 텨?”

그 말을 듣더니, 도둑은 울었습니다. 서럽게 울더군요. 우리는 밖에 있는 사람을 포함해 도둑 두 명에게 차비를 꼬박 챙겨서 보내줬습니다. 그 형님들 젊어 보이던데 지금 성실하게 좋은 일 하시면서 사시는지 궁금하네요.

- 두시탈출 컬튜쇼에서

 

 

4. 여름 징역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이 글을 처음 읽는 순간 서로의 존재 그 자체가 서로를 미워하게 한다는 말이 무겁고 시리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감옥 밖에서 여름 징역은 바로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는모습,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태도, 미움의 원인과 대상을 그릇되게 파악하는 어리석음 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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