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사세요~
함께사는 세상이요~
사노라면 참 별의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일, 어처구니없거나, 비참해지거나, 좌절감이 드는 따위의 일들 말이다. 물론 이게 왠 떡이냐 하는 일들도 만난다. 암튼 이런 일들을 만날 때면 그게 불행이든 다행이든 삶은 내 의지대로만 영위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젊어 혈기방장 할 때야 세상이 손바닥만 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험치가 쌓일수록 ‘인간 의지 너머 저 어딘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질서가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살면서 겪게 되는 평범하지 않은 순간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순간들, 우리는 그걸 운명이라 부른다. 운명에는 행운도 있고, 불운도 있다. 그녀(혹은 그이)와의 운명적 만남 같은 경우는 주로 행운 쪽이겠다. 그런데 우리가 운명이라 할 때는 대개 불운 쪽을 가리킨다. 그래서 운명은 다소 비장하다. 운명의 여신이 유쾌하거나 명랑하진 않겠지. 그래서 운명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삶 앞에서 주저앉게 만들기도 한다. 또 그 반발로, 운명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과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있기나 한 걸까. 있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극복할 수는 있는 것인가. 운명의 장난 앞에서 우리는 많은 고민과 번뇌를 하게 된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 자클린 뒤 프레 <사진출처=나무위키>
자클린의 눈물
자클린 뒤 프레는 영국 첼리스트였다. 2차 대전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5년 1월, 옥스퍼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음악에 천부적 재능이 있었고, 딸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챈 피아니스트 어머니를 둔 덕에, 5세 때 런던 첼로 스쿨을 시작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거장급 천재소녀라는 말이 따라 다녔고, 그건 허언이 아니었다.
천부의 재주에 인간의 노력이 더해져 실력은 일취월장 했고, 16세 때 런던에서 데뷔한다. 모든 것을 꿈 꿀 수 있었고, 그 꿈은 이뤄질 수 있는 꿈이었다. 꽃다운 나이 스물(1965). 바야흐르 삶은 세상을 향해 꽃봉우리를 벌렸다. BBC교향악단의 미국 연주여행에 동행해 뉴욕에서 엘사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세상은 새 천재의 등장에 환호했고, 사람들은 이 연주 이후 엘사의 협주곡을 ‘뒤 프레의 엘사’로 고쳐 부르게 된다.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비치는 자클린의 엘가 첼로협주곡을 듣고는 이곡을 자신의 연주목록에서 뺐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곡에 관한 한 자클린의 연주가 완벽의 극치였기 때문이었다.
그 누가 이 찬란한 영광의 길을 막으리오. 2년 뒤인 1967년 당대의 또 다른 천재 다니엘 바렌보임(피아니스트. 지휘자)과 영원한 삶의 동반자로 맺어진다. 음악의 천재 젊은 부부는 세상의 부러움도 아랑곳없이 그들의 세계에 몰입한다. 25세 되던 해(1970) 남편이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엘사의 협주곡을 실황 레코딩하며 신들린 명연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환호는 또 터졌다. 천재 부부의 듀오 명반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러나 그게 인생의 정점이었던가. 그 이듬해 자클린은 병의 징후에 휘말린다. 이게 뭐지.
차라리 평범했더라면
온몸의 근육 힘이 빠지고 감각 장애가 일어나는 다발성 경화증이었다. 지금은 치료제가 나왔다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원인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이었다 한다.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연주와 레코딩을 강행했지만 그녀를 극찬하던 비평가들조차 점점 돌아섰다. 28세 되던 해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필과의 협연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의 인생 자체였던 연주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음악교육에 주력하며 예술정신을 이어갔지만, 서른을 넘기면서는 안면신경도 마비돼 눈물조차 제대로 흘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한때 더없는 반려이자 동지였던 남편조차 그녀를 외면했다. 한 피아니스트와 사랑에 빠져 그녀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인고의 투병생활 16년. 마침내 1987년 10월, 자클린은 42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나는 운이 좋아 남편을 만났고, 그렇기에 연주하고픈 곡들을 모두 음반에 담을 수 있었다.” 비록 그녀를 버린 남편이지만, 젊은날 남편과 만든 연주녹음을 듣는 게 병고에 시달렸던 그녀에겐 유일한 삶의 위안이자 의미였으리라. 차라리 평범한 삶이었더라면 고뇌는 덜 했을까. 암튼 그녀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한편, 그녀가 숨을 거둔 이듬해 토마스 베르너라는 독일의 한 첼리스트가 그녀를 기리는 첼로곡을 초연한다. 이에 앞서, 베르너는 프랑스 오페레타의 창시자라 불리는 자크 오펜바흐(1819~1880)의 미발표곡들을 정리하다가 한 작품에 주목한다. 그 작품을 본 순간 불현듯 한 사람의 운명이 떠올랐다. 오펜바흐의 이 미발표곡을 초연하면서 베르너는 곡명도 ‘자클린의 눈물’이라 명명했다. 오펜바흐가 곡을 만들고 거의 100년 후, 이 곡은 자클린의 눈물을 머금고 다시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운명이 운명으로 되는 까닭
슬프고 애잔한 선율의 ‘자클린의 눈물’은 간혹 드라마 배경음악으로도 깔린다. 자클린의 운명을 미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곡은 큰 위로가 된다. 비운의 첼리스트라 불리는 자클린. 그렇다. 그녀의 운명은 슬프다. 왜 그녀에게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났을까. 그 연유를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서 설명할 수도 없다. 사람이 알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일은 일어났다. 그런 운명적인 일들은 대부분 삶의 방향을 급선회시킨다. 인생에 중대하고도 심각하고도 결정적인 사건, 다시 물릴 수 없는 지경으로 인생을 몰고 간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불가항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운명이라 부른다. 우연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삶이 허망해지기 때문이리라. 어쩌다 그리됐다고 그냥 치부해버리기에는 삶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리라.
옛날부터 운명은 인간을 유린해왔다. 운명의 여신이 재미삼아 저지른 장난에 인간은 피를 철철 흘린다. 그렇다고 반항할 수도 없다. 덤빈다고 뭐가 달라질 것인가. 문학에서 모든 비극은 운명이 중요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만큼 결정적이라는 말이다.
정리해보자. 운명이 무서운 것은 몇몇 까닭 때문이다. 첫째, 무엇보다 운명은 불가해하다. 왜 어쩌다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더욱이 내 잘못 때문에 생긴 일도 아니다. 납득이 되지 않으니, 인정도 안된다. 그냥 부정하고 싶은 맘 뿐이다. 내 잘못이면 반성하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으면 되지 싶은데, 내 의지나 행동하고는 도무지 연결이 안되니 그저 막막해진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불안하고 허망해서 살 수가 없다. 살고자 몸부림치며 고육지책을 짜낸다. 신의 섭리로 예정돼 있는 일이 일어난 것 뿐이야, 전생의 과오에 따른 업보야, 등등의 논리를 만들고, 신에게 행운을 빌어본다. 하지만 이는 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요새 세상에서는 이게 잘 안 믿어진다. 모든 걸 신의 섭리로 해석하는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다. 나는 그 복도 없다.
둘째, 운명은 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벌어진 일이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사소한 일을 두고 운명이라 하진 않는다. 운명이란 나에게 결정적인 일이 나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걸 말한다. 그러니 더 막막해진다.
셋째, 그러니 운명적 일이란 내가 어찌 해볼 수가 없는 일이다. 불가항력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든, 이왕 벌어진 일, 일단 그렇다 하자. 그런데 이제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또 막막하다. 무력감이 엄습한다.
달래며 데리고 사는 법
불가해하고, 결정적이며, 불가항력적인 이 셋이 한꺼번에 덤비니, 운명의 여신은 참 가혹하기도 하여라. 그렇다고 운명을 피할 수도 없다. 여신은 참 짓궂다. 어쩌면 태어난 자체가 운명 아닌가. 어떤 이는 참 평온한 삶을 산다 싶지만, 겉보기가 그렇지 그런 삶은 없다. 상대적으로 좀 덜 출렁이는 삶은 있겠지만, 그 또한 운명이다. 나는 왜 이리 되는 일이 없지. 탄식해봤자, 운명의 여신은 눈도 깜짝 않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즐길 수’까지는 무리겠지만, 그래도 굴복 않는 길은 있다. 앞 선 이들이 보여 준 길이다. 한 마디로, 운명을 달래가며 데리고 사는 길이다. 대략을 설명하면 이렇다. 일단 벌어진 일을 인정하기. 그리고 찢어진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하기. 그리고 마음의 힘을 키워 새 살이 돋게 하기 등등. 말로는 그런데, 사실 오랜 동안 엄청난 용력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멘탈게임이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이겠는가. 필자 개인적으로도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두 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길들이다. 하기야 누가 가고 싶어 간 길일까마는, 암튼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살다가 때로는 깊은 밤 홀로 ‘자클린의 눈물’을 듣기도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말들도 있다. 전화위복이라고. 지금 당장은 불행으로 보이는 일이 나중에는 결국 좋은 일이 되는 경우 말이다. 자신의 의지로도 그리 만들 수 있고, 또다른 운명의 개입으로 그리 될 수도 있다. 삶의 아이러니다. 그러니 당장의 암담함에 너무 좌절하는 것은 삶의 참맛을 아직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때문으로도 볼 수 있겠다. 실제 누구나 잘 살펴보면 지금 좋은 일이 나중에 안좋은 일로, 또 그 반대가 삶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걸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암튼 결국 사람은 제 갈 길을 간다. 자신의 삶을 전체로 본 사람들이 다 하는 이야기다. 그땐 그렇게 절규했지만 돌이켜보니 다 내 길이었어.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는 거지. 길은 어차피 울퉁불퉁하다. 그 길을 가노라면 천둥번개도 꽝꽝 친다. 그래도 우리는 젖은 몸 추위에 떨면서도 제 길을 간다. 길을 모르면 몰라도 알면 간다.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삶에 축복 있으라.
이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백신도 100%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며,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까지는 안심하기 이르단다. 그래도 우리는 굴복하지는 않았다. 힘을 모아 서로를 격려하며 달려온 길이었다. 새삼 코로나로 시달리는 세상 모든 분들의 안녕을 기원드린다. 그리고 병마로 유명을 달리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전인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