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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칼럼]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20211101일 (월) 10:37 입력 20211101일 (월) 10: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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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세요

함께사는 세상이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서양 인상파 화가 중에 폴 고갱이라는 사람이 있다. 유명 예술인들이 상당수 그렇듯 그도 살아서는 가난과 몰이해로 고뇌했지만, 죽어서는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사후 '언제 결혼할 거니?'라는 작품은 사상 최고가인 3억 달러, 한화 무려 3,441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1848년 프랑스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젊어 선원이 되어 세계 곳곳을 떠돈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귀향한 그가 이번에 선택한 길은 증권 중개인이었다. 다행히 숫자에 감각이 있었던지, 돈도 좀 벌었다. 결혼 후에는 삶이 제법 윤택해졌다. 그 여유에 힘입어 고갱은 평소 해보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취미삼아 든 붓끝에서 재능을 발견한 그는 이러면 화가로서 성공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묘한 자신감에, 35살 되던 해 아예 예술의 길로 나선다.

그림에 전념코자 가족도 뒤로한 채 홀로 파리로 간다. 하지만 팍팍한 도시생활과 만만찮은 생활고는 그를 그림에만 몰두하게 하진 않았다. “나의 유토피아는 저 어딘가에 따로 있을 거야.” 고갱은 자기 영혼의 고향을 찾아 남대서양의 마르티니크 섬으로 훌쩍 떠난다. 남양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원시주의적 작품들은 다행히 파리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테오도르 반 고흐라는 화상과 작품을 거래하게도 된다. 이게 인연이 돼 테오도르의 형인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와도 조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 고흐 바로 그 사람이다. 서로에게 반한 둘은 미술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함께살이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서로의 자화상을 그려 주는 등 깊은 교감을 나눴지만, 개성과 열정이 강한 두 영혼의 동행은 불같이 뜨거웠다가 이내 곧 식는 법이던가. 갈수록 깊어지는 예술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등을 겪다가,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이 벌어지며 함께살이는 단 2개월 만에 끝난다.

반 고흐라는 거울을 통해 새삼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한 걸까. 도시와 문명의 꽉 쪼인 인위에 환멸을 느낀 것일까. 고갱은 다시 시원(始原)의 숨결을 찾아 이번에는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떠난다. "올해는 파리의 조롱 말고는 소득이 없네. 여기서도 그들의 조롱이 내 귀에 들리고 있네. 너무 절망스러워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을 정도라네."

다시 시작한다는 부푼 희망을 안고 도착한 타히티 섬. 하지만 이미 식민지로 변해버린 그곳은 그가 깃들 곳은 아니었다. 그림을 향한 열정으로 실망감을 극복하며 2년 정도 머무르며 60여 점에 가까운 작품을 남기지만, 파랑새의 꿈은 안주(安住)하지 않는 법. 원시의 순수함을 향한 동경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번엔 마타이에아 섬이다. , 이곳이었구나. 드디어 영혼의 안식처를 찾은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갱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고향을 그리는 향수 탓이라 하기엔 방랑도 유분수지, 애당초 절대자유를 향한 예술혼이 깃들 수 있는 땅은 지상에는 없었던 게 아닐까. 암튼 고국에 돌아온 고갱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도 만나고, 개인전도 여는 등 열심을 부렸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그를 맞을 준비가 덜 되었다. 그림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했고, 가난은 여전히 그의 편이었다. 고갱은 또다시 타히티로 떠난다.

각오는 했지만, 삶은 여전히 나락이었다. 육체는 술과 매독으로 병들어갔다. 자살을 결심하며 유작이라 생각하고 마지막 붓을 들었다. 그림 제목은 이러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유작으로 대작을 그려보기로 했네. 미친 듯이 그렸네. 사람들은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하겠지. 그러나 이 작품은 내가 그린 것 중에서 최고이며, 앞으로도 이 그림과 비교할 만한 작품을 그릴 자신이 없네."

화가 폴 고갱은 결국 1903년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제 풀에 못 이겨 사서 고생했다고 하겠지만, 지상에서 별을 찾아다니던 그는 마침내 하늘에 올라 별이 되었다.

 

스타가 되는 길

정녕 그는 별이 되었을까. 답은 그의 유작에 엿보인다. 하필 제목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니. 정녕 우리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멀고 먼 태곳적부터 사람들은 이를 두고 많은 이야기들을 해왔다. 그 이야기들은 세상 곳곳에서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었으며, 종교와 사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요새는 이런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에 그친다. 진짜인 것으로 대접을 못받는다는 말이다. 진짜가 아니니까 믿을 게 못되기도 한다. 곰이 동굴에서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되었다니. 재미는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물며 사람이 죽어 별이 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굳이 별이 되고 싶으면 죽지 말고 살아서 일단 경쟁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한 다음 멋진 노래를 불러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 유명가수가 되어야지. 그게 스타 아닌가.

오늘날 우리는 신화 대신 과학을 믿는다. 왜냐면 과학만이 사실이니까. 그리고 증명된 사실만이 진실이니까. 그러니 우리도 가장 확실한 지식인 과학에게 물어보자.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과학적으로인간은 원자들로 이뤄져 있다. 세상 만물이 다 그렇다. 그럼 그 원자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보면 되겠다. 답부터 말하면 모든 원자들은 별에서 왔다. 과정은 이렇다. 태초에 대폭발(빅뱅)이 있어 우주가 시작된다. 그 폭발은 어떤 특정 시점에 우주 공간의 한 지점에서 일어난 게 아니란다. 그 폭발에서 시간이 비로소 시작되고, 공간도 함께 열린 것이란다. 시간이 시작됐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인간의 인식능력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공간은 지금도 계속 팽창되고 있다고 하니 이것도 이해곤란이다.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니 일단 그렇다 하자.

암튼 이 폭발에서 모든 게 시작되는데, 폭발 극초기에는 우주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절대 무(), 완벽한 진공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 진공 속에는 끊임없이 입자와 반입자가 순간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일(쌍소멸)이 요동치고 있다. 이런 쌍소멸의 와중에 어쩌다가 입자가 반입자보다 조금 더 많아지는 일(대칭성 깨어짐)이 생기는데, 이렇게 남은 입자가 물질이 된다. 조금 상술하면, 대칭성 깨어짐에서 소립자(쿼크, 전자, 광자 따위)가 생기고, 이어서 양성자, 중성자, 원자핵이 차례대로 생겨난다. 한편 우주 온도가 점차 식으면서 이들 입자들이 뭉쳐서 가장 첫 원자인 수소 원자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우주 공간 밀도가 처음처럼 일정하다면 우주는 수소로만 가득 차 있을 텐데, 우연히 아주 조그만 밀도 차이가 생기고, 그 중 밀도가 높은 곳(수소가 상대적으로 많이 모인 곳)이 원점이 되어 중력이 발생하고, 이 중력이 다른 수소들을 더 끌어 모으고, 그러니 이곳의 밀도가 점차 높아져 결국 그곳이 별이 된다고 한다. 이 별에서 태양에서처럼 수소가 융합해 헬륨이 되고 헬륨이 탄소가 되고 등등, 화학 원소주기율표 상 앞자리 원자들이 만들어진다.

별들도 태어나면 성장하다가 때가 되면 죽는다. 적색거성 초신성 중성자별 등 별의 일생에서 철 금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자들이 태어난다. 이 원자들이 결합해 고유성질을 가지는 분자가 만들어지고, 이 분자들의 조합이 곧 물질이다. 좀 복잡하지만, 결론은 우리는 별의 자손이라는 얘기다. 우리의 우주적 신분은 스타다. 그러니 당신은 스타다. 별에서 온 그대다. 다만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밤하늘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약 6천 개라 한다. 물론 도시의 공해나 인공 불빛의 방해를 받지 않는 경우에 그렇다. 몽골 초원이나 서(西)호주 벌판에서 말이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우리도 밤하늘을 보며 은하수를 찾곤 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눈감고 내 맘 속의 별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맘 속 별은 아마 6천 개를 훌쩍 넘으리라. 우주엔 약 1천 억개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에는 또 1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니, 그 숱한 별들 가운데 내 별 하나쯤 없을까. 그러니 당신은 별이다. 그래서 어린왕자는 물었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철학자 칸트는 하늘의 별과 내 맘속의 별을 경탄하며, 또 반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리며 이에 답한다. 물질이 생긴 별과 예술이 노래하는 별은 다른 별이라고? 뭐 그렇긴 하지만, 천문학과 문학은 글자 하나 차이이기도 하다. 무에서 유가 나왔다는 과학이야기나 고갱이 별이 되었다는 문학이야기나 내 마음 속에서는 비슷한 이야기 아닌가. 양자역학을 좀 넉넉하게 풀어보면 그리 말하고 있다 해도 될 성 싶다.

 

나는 그려야 한다

달과 육 펜스라는 소설이 있다. 서머싯 몸이라는 사람이 고갱을 모티브로 하여 꾸민 이야기다. 소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결혼 17년 동안 별탈없이 잘 살다가 돌연 가족도 뒤로 한 채 한마디 말도 없이 잠적해버린다. 마흔살 즈음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음은 나만의 별을 찾아 별이 되는 법을 암시하는 소설 한 대목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림은 그릴 줄 아십니까?"

"아직은 안 돼요. 하지만 될 거요."

"어째서 그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려야 해요."

"하기야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고, 나중에 후회하면 큰 낭패가 아닙니까?

"난 그려야 해요."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삼류 이상이 되지 못 할 수도 있는데,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습니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죽어요."

 

전인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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