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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호 사회문화평론가의 <이야기마당>

20220126일 (수) 13:2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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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범퍼는 방해물을 밀어내기 위한 도구?

운전자는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는 그 순간부터 교통사고와 무관할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유독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몸통 여기저기가 움푹 꺼지고 무언가가 바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런 걸까?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은 만일의 경우 다른 차와 부딪히면 차는 고장나도 운전자의 부상은 최소화할 수 있게 일부러 범퍼 등이 쉽게 망가지도록 설계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나라에서는 보통 범퍼와 사이드미러 두 군데가 집중적으로 망가진다. 예를 들어 종렬주차를 하려는데 앞뒤로 세워진 차가 조금씩 이동해 주면 좋으련만 그 상태로는 공간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그들은 범퍼를 이용해 앞뒤에 세워진 차들을 쭉 밀어내고 공간을 넓힌 후 악착같이 주차를 한다. 범퍼를 방해 대상을 밀어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차를 제의 집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자기 차에 상처를 내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미국인이나 유럽인에게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에 불과하다. 부서지거나 상처가 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것이 무서워 벌벌 떨며 차를 모는 것을 그들은 오히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혹시 미국인이나 유럽인에게 차를 빌려주어야 할 일이 생길 때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실업률이 90퍼센트가 넘는 섬나라 나우루

정보화 사회 이후, 세계는 실업대란이라고 할 만큼 치솟는 실업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니는 실업률 증가가 고스란히 경기 침체로 이러지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실업률은 보통 한 자릿수가 기본인데 10퍼센트대가 넘으면 나라에 비상이 걸린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과 거리가 먼 나라도 있다. 적도 아래 태평양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 나우루의 실업률은 무려 90퍼센트에 이른다. 국민 대다수가 직업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물론 옛날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 나우루는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식량을 자급자족했다.

하지만 1889년 섬에 질 좋은 인 광석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인은 그 섬에 서식하고 있는 알바트로스의 똥이 산호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진 것이다. 선진국들은 섬에 인 광석을 채굴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 위해 앞다퉈 나우루로 몰려들었다. 그 덕분에 나우루의 GDP는 급성장했고, 1980년대에는 미국보다 윤택한 나라로 발전했다.

부자가 된 나우루 국민은 지상낙원이 따로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금 한 푼 없고 의료비와 교육비가 전액 무상인 데다 노동의 의무도 없으면서 연금은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힘든 채굴은 돈을 벌기 위해 키리바시나 사모아 등지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시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우루 사람들은 일은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하지만 2000년경부터 지상낙원에 서서히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라를 윤택하게 만들어 국민을 지상낙원으로 이끌어주던 인 광석이 바닥을 드러냈던 것이다. 인 광석은 바닥났지만 몇 십 년을 놀면서 지내온 나우루 사람들은 도무지 일할 의용을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우루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그들은 할 일 없이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가만히 있는 것보다 시원하다는 이유만으로 목적지도 없이 오토바이나 차를 몰고 섬을 돌아다닌다. 정부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있지만 현재 나우루는 파산 직전에 놓여 있다.

그런데 나우루의 실업률 변천사가 매우 흥미롭다. 미국 CIA가 매년 발행하는 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나우루의 실업률은 2002년 시점에 0퍼센트로 되어 있다. 그런데 2004년에는 갑자기 90퍼센트로 뛰어올랐다. 그 사이에 나우루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금도 그 이유가 확실히 밝혀지기 않고 있다.

 

 

퇴고의 유래

글을 다 쓰고 난 뒤에 다시 다듬고 고쳐쓰는 과정을 한자어로는 퇴고(推敲)라 한다. 이 말은 당나라의 승려 시인이었던 가도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들은 연못가 나무숲에 깃들고 鳥宿池邊樹

스님은 달빛 아래 절간 문을 두드린다 僧敲月下門

 

어느 날 시상이 떠오른 가도가 이런 시를 지었다. 그런데 스님이 문을 민다(-)‘라고 해야 좋을지, 아니면 문을 두드린다(-)’라고 해야 좋을지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새가 제 둥지를 찾아들듯, 스님이 열린 문으로 자연스레 들어간다고 보면, ‘문을 민다라고 해야 좋을 듯했다. 그러나 한편, 밤이 이슥해서 낯선 대문을 찾은 나그네의 입장이라고 보면 문을 두드린다라고 해야 더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표현이 더 좋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던 가도는 때마침 지방관의 행차가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웬 중 하나 때문에 가던 길이 막힌 지방관의 하인들이 가도를 붙잡았다.

네 이놈! 네 눈에는 지방관 나리의 행차도 보이지 않느냐?“

잘못하면 혼쭐이 날 판이었다. 이 때 지방관이 나서며 가도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그대는 나의 갈 길을 막고 있었는가?”

가도는 시를 짓다가 몰두해서 그렇게 됐다고 대답했다. 가도의 말을 자세히 듣고 난 지방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것은 두드린다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 지방관은 당대의 대문장가로서 후세에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한유였다.

이 고사로부터 글을 다 짓고 나서 고쳐쓰는 것을 퇴고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 아는 이야기

낯선 나라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조용하고 아늑한 어촌 마을의 아침이었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한 고기잡이 노인이 평화롭게 단잠을 곤히 자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마을에 휴양을 온 한 관광객이 바닷가를 거닐다 이 노인이 잠자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젊은이는 그 노인이 행복하게 잠자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어서,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여기서 찰칵! 저기서 찰칵! 찍어댔다. 그런데 이 찰칵거리는 소리에 그만 이 고기잡이 노인은 잠을 깨고 말았다.

거 뉘시오?

아이쿠, 죄송합니다만,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할아버지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 그만……, 이거 어떡하지요?

……

그런데 할아버지는 고기 잡으러 나가지 않으세요? 벌써 해가 저만치…….

벌써 새벽녘에 한 번 다녀왔구만.

, 그러세요? 그러면 또 한 번 다녀오셔도 되겠네요?

그렇게 고기를 많이 잡아 뭐하게?

, 할아버지두, 고기 많이 잡으면 할아버지의 낡은 저 거룻배를 새걸로 바꾸실 수 있잖아요?

그래가지고?

그 다음에는 새 거룻배로 고기를 잡으시면 훨씬 빨리, 한결 많이…….

그 다음에는?

그야, 크고 좋은 배를 몇 척 더 사시고, 사람도 많이 부리고…… 그렇게 되면, 한꺼번에 뭉칫돈을 버는 것은 시간 문제 아니겠습니까?

옳거니, 그래서는?

그 다음에야이 마을에 생선 가공공장도 세워, 싱싱한 통조림도…….

그러고 나서는?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별 일도 않고 가만히 누워, 그저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지요.

이 말에 고기잡이 노인이 대답했다.

지금 내가 바로 그렇게 지내고 있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 자신의 행복을 자꾸만 나중으로 미루어 가며 살아간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꿈은 중학교 이후로, 중학교 시절의 꿈은 고등학교 이후로, 고등학교 시절에 하고 싶은 것은 대학교나 취업 이후로, 대학교 시절의 꿈은 졸업 이후로, 그리고 회사에서는 반장, 주임이나 과장, 차장, 부장 승진 이후로…….

그뿐만 아니라, 오늘 하고 싶은 것은 내일로, 내일 하고 싶은 것은 주말로, 아니면 휴가나 방학 때로…….

이렇게 행복을 미룬덕분에 서운해지고 텅 비어버린 우리의 마음은 여러 가지 물질로 보상 받으면서 대리충족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리충족이 우리의 서운한 마음을 잠시 달래줄는지는 몰라도 그것을 한 번 두 번 되풀이하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갈수록 더욱 공허해진다. 그래서 대리충족에 필요한 물질의 양은 점점 더 커져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 마음도, 정신도 더욱 빈약해진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큰 보상을 필요로 한다. 바로 이것이 모든 중독증의 기본 원리이다.

행복을 미루는 대신 물질로 만족하고, 그래도 마음은 허전해…….

이 악순환의 고리, 중독증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은, 행복을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직접 찾아 나서는 일이다. 인간의 행복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 지금 가지고 있는 욕구 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것을 정직하게 현실로 만들어 내는 데에 있을 것이다.

 

지인호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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