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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칼럼] 스팸이 억울하다

20220701일 (금) 14:4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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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세요

함께사는 세상이요~

 

우리가 즐겨 먹는 부대찌개나 볶음밥에는 스팸이 주재료의 하나다. 그냥 구워서 흰쌀밥과 함께 먹어도 좋다. 짭쪼름하고 기름진 스팸이 빠진 부대찌개는 앙코 없는 찐빵이리라. 반면, 현대인의 필수 소통 수단인 이메일에서 스팸메일은 인터넷이라는 찐빵속 쓰레기다. 그런데 그 쓰레기 스팸이 바로 앙코 스팸에서 나온 말이란다. 어쩌다 둘이 이렇게 엮이게 됐을까.

 

구박받던 어깨살의 변신

먹는 스팸은 1927년 미국의 식품업체 호멜사에서 돼지고기 어깨살(앞다리살)을 이용해 만든 제품이다. 서양사람들은 일찌감치 돼지 넓적다리살(뒷다리살)로 장기보관에 용이한 훈제 육가공품을 만들어 먹었다. 이게 햄이다. 돼지 뒷다리살을 통째로 소금에 절인 후 나무연기를 씌워 겉만 익힌 다음,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걸어 놓고 적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 간 건조 및 발효시켜 만든다. 돼지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돼지 뒷다리는 살이 두터워 가공육으로 만들어 먹을만 했다. 이에 비해 앞다리는 상대적으로 살이 많지 않아 대부분 버려졌다 한다. 일일이 발골하려니 번거롭고 그 과정에서 살이 바스라져 그다지 상품가치가 많지 않아서다.

그런데 호멜사는 버려지던 이 값싼 부위에 주목했다. (지금도 앞다리살은 삼겹살이나 목살의 절반 정도 가격에 팔린다.) 회사 설립자의 아들인 제이 호멜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주둔 미군의 병참장교로 복무한 바 있는데, 이 때 뼈를 발골한 고깃살만으로 가공육 전투식량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발상을 한다. 전쟁이 끝난 뒤 호멜은 이 발상을 토대로 1926년 세계 최초의 통조림 햄을 개발한다. 그런데 넓적다리 햄을 만들고 남는 어깻살 같은 부산물들을 그냥 버리자니 아까웠다. 뼈를 발라내고 곱게 갈아 소금과 물, 감자, 설탕 등을 섞어 햄과는 다른 잡육떨이 상품을 만들었다. 이게 스팸이다.

 

처음엔 이 신제품을 호멜 조미 햄(Hormel Spiced Ham)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새 상품 이름 공모전을 한다. 배우 케네스 데이누가 조미 햄(Spiced Ham)을 축약한 'SPAM'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으로 당선된다. 이름까지 새단장 한 스팸은 싼 가격에 비해 훌륭한 맛으로 발매된 지 4년 만에 18천 톤의 판매고를 올린다.

이런 스팸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일이 벌어진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미군은 값도 싸고, 저장이 용이하고, 휴대도 간편하며, 고열량 단백질 식품인 스팸을 대량 구매한다. 미군의 C레이션에는 물론이고, 영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지원하는 랜드리스 물자에 스팸은 필수였다. 영국은 스팸랜드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할 정도로 많은 스팸을 지원받았고, 특히 소련은 스팸으로 대표되는 미군의 식량지원으로 히틀러와 싸움을 이길 수 있었다.

전쟁 개시 직전인 19398(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건 이 해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다.)에 맺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어기고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건 19416. 히틀러는 독소전쟁(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자마자 최우선적으로 소련 서부의 유전지대와 곡창지대(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다. 소련군은 극심한 물자난, 특히 식량난에 봉착한다. 이때 스팸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

 

2차대전의 숨은 용사

러시아인들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보드카와 쌀로라는 안주를 즐겼는데, 돼지 비계를 소금과 향신료에 푹 절여 만드는 이 쌀로의 맛이 스팸과 비슷했다. 소련군은 이런 스팸을 '루스벨트 소시지' 라고 부르며 반겼다. 더구나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를 독일에 빼앗겨 밀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귀리와 호밀에 곁들여 먹는 스팸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였다 한다. "스팸이 없었다면 우리 군은 고기를 먹지 못했을 것이다." 소련 공산당 2대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의 말이다.

미국이 일본과 싸우던 태평양 지역 괌, 필리핀, 하와이에서도 스팸이 매우 인기가 높았다. 종전까지 호멜사가 군납한 스팸의 양은 68388, 통조림 약 1억 개에 이른다. 2차대전은 스팸이 전세계로 보급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주구장창 스팸을 먹다보니 어느새 너나없이 그 맛에 좀 질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염장육보다 훨씬 나은 음식이 나왔다"면서 좋아했던 사람들이 종전이 되자 스팸을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은 종전 후에도 상당 기간 스팸 등을 주는 배급제를 실시했기에 더 했다. 소련군도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며 형편이 나아지자 투숀카라는 소고기 스튜 통조림을 따로 받아 먹었다. 더구나 종전 후 각 가정으로 돌아간 참전군인들이 갖고 온 막대한 양의 스팸으로 제품 이미지는 더 추락한다.

애당초 호멜사는 스팸을 출시하면서 광고를 많이 해 광고 공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종전 이후 싸구려 제품의 물량공세라는 식으로 제품 이미지도 나빠져, 스팸은 어쩌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이 주는 것의 대명사가 된다.

 

쓰레기 정보 스팸메일

인터넷 통신이 활성화되던 1990년대 초. 인간 세상 늘 그렇듯,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 정보로 건전한 소통을 흐리는 일이 잦아진다. 사람들은 먹는 스팸에 들러붙은 그와 유사한 이미지 때문에 이를스팸이라고 불렀다. 요구하지도 않은 전자 메시지들을 제멋대로 대량 전달하는 스팸메일이다.

인류는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쓰레기 스팸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스팸도 자체 진화해 그 전쟁이 만만치 않다. 서버는 어디서나 운용 가능하고, 스팸 범죄자들은 추적을 피할 수 있는 방탄 호스팅을 제공하며, 새로운 스팸 기술과 어떤 서버가 스팸에 우호적인지를 조언해주기까지 한다. 무차별적으로 PC를 바이러스로 감염시키고, PC를 통해 스팸메일을 보낸다. 세계적으로는 매초 약 200만 개, 매일 1,710억 개의 스팸메일이 발송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스팸 노이로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은 스팸메일 1GB 지우면 탄소 14.9감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에 따르면, 통상 이메일 한 통은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서버를 가동하면서 이산화탄소 4g을 배출한다고 한다. 메일함에서 1기가바이트(GB)만큼만 이메일을 지워도 연간 이산화탄소 14.9을 감축할 수 있다고 기사는 전한다.

 

디지털 탄소 줄이기

그래서 IT 업체들이 수시로 디지털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캠페인을 벌인다. 카카오는 지난달 '그린 디지털' 캠페인을 실시했다. 이용자들에게 불필요한 이메일을 삭제하도록 권하는 메일을 가볍게, 지구도 가볍게가 그 주제다. 데이터를 송수신하기 위해 서버 및 데이터센터 등과 통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게 목적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스팸메일 데이터를 보관하는 데만 연간 1700t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카카오는 국민 5182만 명이 메일 50통씩을 지우면 탄소 1036을 줄일 수 있다이는 서울과 제주를 비행기로 네 번 왕복하고도 남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암튼 먹는 스팸 입장에서는 이런 디지털 쓰레기 스팸과 함께 엮이는 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어려운 전쟁 시기에 그래도 좋은 식량이 돼주었고, 지금도 괜찮은 먹거리로 서민들과 함께 하는데, 이미지가 쪼금 유사한 게 있다고,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쓰레기 메일과 같이 엮이다니.

미국사회의 경우는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먹는 스팸과 쓰레기 스팸이 그다지 같이 연상되지는 않는다. 비록 어휘로는 엮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미군을 통해 스팸이 들어왔다. 이후 호멜사와 기술 제휴를 한 모 대기업 식품회사가 스팸을 생산하고 있다. 짜고 기름지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스팸은 여전히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은 지금도 미국 다음으로 스팸을 많이 생산 소비하는 나라란다. 1인당 소비량은 미국을 능가하고.

 

전인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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