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대메뉴로 바로가기 서브메뉴로 바로가기

[전인철 칼럼] 시절이 하 수상하니

20220810일 (수) 13:24 입력 20220810일 (수) 13:25 수정

  • 축소
  • 확대
  • 이메일 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보내기
  • 트위터 보내기
함사세요
함께사는 세상이요~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톰슨 시턴이 1897년에 펴낸 동물소설집에는 ‘늑대왕 로보’ 이야기가 나온다. 동물소설의 백미라 할 이 이야기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대강은 이러하다. 
미국 뉴멕시코 주 북부 커럼포 마을은 목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마을주민들은 몇 년 째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을 인근 야산에 사는 늑대 무리에게 연일 가축들이 피해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주민들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문제는 그 무리의 우두머리 늑대 로보가 보통 놈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로보는 큰 몸집만큼이나 힘이 세고 지혜로운 리더였다. 마을 사람들은 로보를 잡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로보의 영리함과 대담성을 당해낼 수 없었다. 로보에게 늑대 덫 따위는 오히려 사람들을 조롱하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사냥개도 감쪽같이 헤치는 로보 무리는 지난 5년 동안 수백 마리의 소를 먹어치웠다. 그것도 가장 좋은 놈만 골라서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시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수 차례 로보와 맞짱을 떤 시턴은 독이나 잔꾀로는 도저히 로보를 잡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턴은 마지막으로 수컷의 본능을 이용하기로 작정하고, 로보의 짝인 암컷 블랑카를 공략한다. 결국 블랑카는 올가미에 걸려 죽었고, 눈이 뒤집힌 로보는 분별력을 잃고 사납게 날뛰다 그마저 덫에 걸렸다. 두 눈은 노여움으로 파랗게 번뜩였다. 덫에 걸린 채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호령하던 평원을 조용히 쳐다보던 로보는 모든 걸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지략과 용맹이 무색하게 사랑에 절규하며 장엄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훌륭한 대장을 잃은 늑대 무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람들의 손에 한 마리씩 죽어갔다. 커럼포 계곡의 로보 무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늑대왕 로보
한낱 늑대 무리의 이야기지만 예서 보듯 무리 동물에게 지도자는 엄청 중요하다. 리더의 사태 판단 능력과 대응 능력 등은 무리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래서 무리동물의 대장뽑기 경쟁은 엄청 치열하다. 개체의 생사가 걸리기도 한다. 대가리 박이 터져라 격돌하는 사슴 무리의 왕뽑기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종종 보지 않는가.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 무리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주로 본능에 좌우되는 여타 동물 무리에서보다 훨씬 지대하고도 복잡하다. 통치철학이 분명해야 하고, 집단의 아젠다 설정도 잘 해야 하고, 사회통합도 이뤄야 하고, 사회의 성장 발전을 위한 비전도 선명해야 하며, 실질적 민생에도 철저해야 하고, 집단 구성원들의 인간다운 삶에도 신경 써야 하며, 자유 평화 평등 등 사회의 유지 존속을 위한 가치구현에도 민감해야 하며 등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능력과 자질을 지녀야 한다. 거의 신적 경지가 요구된다. 

인간 무리의 지도자는
사실 이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지도자란 현실에서 있을 순 없다. 그래도 무리대중은 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를 원하고 찾는다. 신분세습을 통해 지도자가 정해지는 과거 전제왕조에서건, 선거를 통해 뽑는 현대 민주국가에서건 좋은 지도자를 만난다는 건 거의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우리는 별같이 빛나는 지도자를 성군(聖君), 즉 ‘성스럽기까지 한 지도자’라 부른다. 동서고금 역사에서 성군은 드물다. 오히려 암군(暗君), 혼군(昏君), 폭군(暴君)이 수두룩하다. 세습왕조에서도 성군이 나오기도 하고, 민주 선거에서도 암군 혼군 폭군 따위가 출현하기도 한다. 성군은 아닐지라도 명군(明君), 현군(賢君)이나마 자주 만날 수 있다면 이는 하늘이 허락해야 할 정도다. 
인간 무리에서 ‘좋은 우두머리 정하기’가 이다지 어려운 건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무리가 갖는 원초적 한계다. 인간 무리는 아직도 ‘좋은 왕 뽑기’에 있어서는 늑대나 사슴 무리만 못하지 싶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좋은 지도자보다는 우상(偶像)을 추앙하기 쉽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도자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럴 것이다. 탁월한 리더십과 집단 운영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 매번 현군이 나올리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도 우리는 성군 명군을 기다린다. 늘 실망하고 분노하면서도 말이다. 이 기다림의 어디서 연유할까. 거대 집단에서 지도자는 단순한 리더가 아니라 그 집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허접한 상징을 참지 못한다. 자신이 허접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상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성군 명군 암군 혼군 폭군
우리에게도 성군이 있다. 세종이다. 세종은 성군이자 대왕이다. 우리에게 세종대왕님이 계신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5백년 왕조에 이런 분이 한 분도 없었다면 우리 스스로가 자신들을 얼마나 허접하게 여기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게 세종이 있었다면 이웃나라 중국에는 강희제가 있다. 그는 여진족이 중원을 제패하고 세운 청나라의 제4대 황제로,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성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흔히들 그를 일러 ‘천 년에 한 번 나올 황제’ 즉 천고일제(千古一帝)라 부른다. 
그는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해 61년을 통치하며 중국의 최전성기를 이룩한다. 엄청난 노력파인 그는 문무를 겸비했다. 인성은 소박하고 검소했고,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였다. 비록 자신의 체제 유지를 위한 기획이었다 하더라도, 매사에 백성들의 편익을 우선했다. 공부벌레라 불리울 정도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말 등에서 정복전쟁도 사양치 않았다. 대만 몽골 위구르 티벳 베트남 미얀마를 정벌하고, 남하하는 러시아와 조약을 맺어 북방 국경선을 정하기도 했다. 오늘날 중국 국경의 대강을 만들어 다민족국가 중국의 원형을 만든 이가 그다. 
내치에서도 탁월했다.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들은 강한 군사력으로 중원을 정복했지만, 말 위에서 나라를 경영할 수는 없었다. 제도적 통치 시스템을 새로이 만들어 장수 왕조 청나라 2백 50년 통치의 기반을 다진 이가 강희제다. 

강희제의 선정
인사가 만사라 했다. 강희제는 만주족과 한족을 똑같은 비율로 등용하는 만한병용제라는 공평한 인재 등용 제도로 한족 지식인들의 협조를 얻어냈다. 피지배세력의 통치이념인 유교문화를 앞세워 사회통합도 이끌어낸다.   
재정도 중요하다. 2백 50년 지배의 핵심 포인트다. 이전 명나라의 세금제도는 인두세와 토지세가 주축이었다. 사람머리 수대로 부과하는 인두세는 평민 빈민에게도 가차없이 매겨졌다. 호랑이같은 세금을 피해 백성들은 호적 등록을 포기, 인구의 70%가 숨어지냈다. 당연히 세수는 떨어졌고, 나라는 재정난에 시달렸다. 
강희제는 통치 초기 일단 인구조사(盛世滋生人丁)부터 실시한다. 당연히 실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과감히 인두세를 폐지했다. 이에 백성들은 호적을 취득했고, 숨어 살 필요가 없어졌으니 생업에도 열심을 내었다. 인두세 폐지로 인한 세수 감소는 토지세로 충당했다. 땅부자들에게만 토지세를 매겼다. 땅부자들도 반발은커녕 오히려 환영했다. 대부분 한족인 땅부자들은 이민족 정복왕조가 자신들의 땅을 몰수하는 대신 세금만 내면 소유권을 인정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땅없는 서민들은 당연히 환영했고. 이같은 세제는 강희제 때 그 기조가 마련되고, 아들 옹정제 때 ‘지정은(地丁銀)’이라는 제도로 본격 가동된다. 사회의 경제적 정의가 구현되고, 따라서 청나라의 통치권력 구조도 안정된다. 정복왕조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일단 그랬던 것이다.      
성군 명군의 시절을 치세(治世)라 하고 암군 혼군의 시대를 난세(亂世)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나. 세월이 하 수상하니 한 치 앞이 안개다.   

전인철 편집주간



지역 칼럼
  • 이전
    이전기사
    허준이 교수 “수학은 마라톤...어렵지만 재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