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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칼럼] 코로나 19, 그 이후...

새 질서의 전기로 만들자

20200504일 (월) 11:15 입력 20200504일 (월) 11: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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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세요~

 

국내 코로나 19 사태가 일단 진정세로 들어선 모양새다. 하루 확진자 숫자가 10명 안팎으로 그치는 데다가,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지킨 덕에 집단감염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제 한 몸 희생을 마다 않은 의료진들과 불철주야 공동체의 안녕에 헌신해 온 방역당국의 노고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이동제한과 도시봉쇄도 없이 역경을 극복해 낸 대구시민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5월 초부터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형 거리두기로 다소 완화한다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언제 어디서 다시 바이러스가 준동할 지 아무도 모르니만큼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방역 모범국'이라던 싱가포르에서 최근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중심으로 하루 수백명씩 확진자가 나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 방역당국도 코로나 19 재확산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상보다 길어진 방역비상으로 피로감도 느끼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코로나19가 국내외적으로 종식될 때까지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인류의 지혜

하지만 사람은 아무리 큰 위기에 맞닥뜨려도, 언제까지나 거기에 함몰돼 살진 않는다. 일단 큰 고비를 넘기고 나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을 되살피게 마련이다. 그게 지혜고, 그런 지혜가 우리 호모 사피엔스라는 우리 생물종을 지구상에 이리도 번성하게 만든 토대다.

머잖아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재건된 일상은 코로나 이전의 일상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똑같아서도 안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일단 잡힌다 하더라도 어쩌면 겨울쯤 2차 대유행이 올지 모르며,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지금의 다양한 감기 바이러스처럼 코로나 19 바이러스도 결국 늘 같이 살아야 하는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감기는 보통 200여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바이러스가 일으킨다고 한다. 그중 30~50퍼센트가 리노바이러스(rhinovirus)이고, 10~15퍼센트가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이다. 이번 코로나 19신종이라 인류가 당장 대처할 수단이 없고 치사율은 상대적으로 높아, 이 난리를 겪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뉴노말

그러니,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오로지 자연 그대로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생존을 위해 생각이라는 기제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왔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문화를 만들었고 문명을 이룩했다. 생존에 불리한 환경조건들은 어떻게든 바꿔가며 적응에 성공했고, 그 결과가 오늘에 이른다. 대략 20여 종에 이르는 호모 사피엔스의 동료 종()들이 하나 둘 도태되어 갈 때도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았다.

인류 문명사를 보면, 전쟁이나 대기근, 자연재해, 역병 등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태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는 이런 역경을 오히려 문명사적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삶을 이어나갔다. 지금 인류도 그런 시점이 아닌가 한다.

 

문명사적 대전환

그러면 이제 인류는 어떤 문명사적 가치전환을 모색해야 할까.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이 논의의 시작이었으니, 우선 건강이라는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우리는 보통 건강, 하면 우선 몸 건강부터 생각한다. 그러나 건강을 넓게 생각하면, 몸만 아니라, 맘건강, 나아가서는 세상 건강도 꼭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몸과 맘은 세상 속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사실 자연 속에서 산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자연이 건강해야 한다.

현대 문명은 도시문명이다. 자연을 떠난, 자연을 일정 부분 거역하는 문명이다. 자연을 거역하며 발생하는 생존상의 문제점들을 이미 인지한 인류는 이미 환경보호, 자연보호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 귀속돼야 할 영역이다.

 

자연과 인위

도시문명의 역사는 인류사 전체를 볼 때 그다지 길지 않다. 더구나 현대 도시는 서유럽에서 근대자본주의가 흥기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물론 인류가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적응에 중요한 기제로 작동했다. 특히 도시와 자본주의가 만나면서 인류는 굶주림이라는 큰 난제를 아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인류사 최초로 다수 대중의 물질적 풍족, 부유함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도 만만치 않아, 이제 그 병폐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코로나 19도 이런 큰그림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여기저기서 코로나 이후를 이야기한다. 더욱이 우리보다 더 큰 충격을 겪은 미국과 유럽의 경우,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로 코로나 이후의 경제 문제에 집중돼 있다. 거래 당사들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는 비대면 경제, 이를 기반으로 한 4차산업 중심의 주도권 선점 문제 등을 얘기한다. 물론 중요한 문제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근본적인 성찰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자연을 충분히 인지하는 생태학적 성찰이다. 사실 이번 코로나 19 발생도 무차별적 자연개발이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간과 별 접촉이 없던 박쥐 영역을 대책없이 침범한 죄과라는 얘기 등이 이를 말한다. 인간의 의학과 현재 면역능력은 만능이 아니다. 비단 이번 코로나 19 뿐만 아니라, 에볼라나 에이즈 등도 이런 경우다.

그런데 자연개발은 근원은 사실 자본주의다. 인간은 자연에 노동을 덧붙여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한다. 문제는 현행 자본주의는 자본의 무한 이익을 추구하므로, 결국 무한개발, 무한경쟁을 낳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업이나 사회적 불평등,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 등 자본주의의 맹점을 바로잡기 위해 수정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등도 시도했지만, 이는 한계를 드러냈다.

 

코로나 이전은 없다

생존의 문제, 특히 지속적 생존의 문제는 개인이나, 사회에서 더 나아가 자연까지 고려해야 전체적 조화와 균형이 잡힌다는 사실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더 선명해졌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서 더 나아가 자연까지 고려하는 자본주의, 즉 자본주의의 생태학적 버전이 이제 시급한 시점이다.

인류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자본주의로 인한 왜곡된 삶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직시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공공 의료체계의 붕괴도 보았고,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문화가 집단 감염병을 대처하기에는 얼마나 취약하지도 목격했다. 소위 강대국들 지도자들의 자국 중심주의 신독트린이 인류공영의 보편적 가치를 담지못한다는 사실도 절감했다. 사회에는 국경이 있지만, 자연에는 국경이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외계인이 쳐들어 왔는데, “우리나라만 지킨다, 참 아득한 얘기다. 미세먼지 감소로 맑아진 베이징 하늘을 보며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보다 많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이 모든 게 코로나의 역설이다. 잘 굴러가고 있는 듯한 시스템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풍요의 역설이다. 역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리한 호모 사피엔스는 이 기미를 잘 감지해야 한다. 이제 코로나 이전은 없다.  

 

전인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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