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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칼럼] 우리는 이제 진정 선진국인가

20200517일 (일) 20:1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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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세요, 함께 사는 세상이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한껏 높아지고 있다. 주된 계기는 코로나 19를 모범적으로 대처한 때문인데, 단군 이래 5천년 민족사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초일류 수준으로 평가받는 건 이번 코로나 방역이 처음이지 싶다. 'K-방역'이 국제적 표준이 되고, 이에 따라 방역물품을 지원해달라거나, 방역 노하우, 대응 시스템 등의 자문을 구하는 각국의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전국 단위의 총선마저 큰탈없이 치러냈으니, 한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는 건 당연하다 하겠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대한민국의 국제적 지위와 국격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2차대전 이후 새 질서를 구축하기 시작한 나라들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는 독보적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룩했다. 안보 위협이 늘 상존하는 분단상황에서도 산업화는 물론 민주화도 동시에 이뤄냈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우뚝 올라섰고,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이행한 지는 이미 오래다. 일제 식민지 수탈과 억압이 낳은 왜곡된 사회구조 속에서도, 또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아픔 속에서도 우리는 ‘꽤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낸 것이다. 

‘국제시장’과 5.18

최근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1천4백만 관객이 들었던 대박난 영화라 많이들 기억하시겠지만,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 철수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부산 피난민 시절, 독일 광부 간호사 파견, 월남전 파병, 이산가족 찾기 등 격변의 우리 현대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질곡의 시대를 헤쳐 온 선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좌절과 희망을 우리 시대의 아버지 ‘덕수’(황정민 분)의 삶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한다. 오직 가족만을 위하며, 평생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 아버지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임을 잊어서는 안되리라. 
5월이라 최근 각 방송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집 프로들을 많이 방영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이 불법적 권력찬탈을 노리고 민주시민을 무차별 살육한, 20세기 개명천지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여러 증언과 함께 다각도로 재조명됐다. 그러나 운동 발발 40년이 된 오늘에도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되레 적반하장으로 주동자가 당당히 큰소리치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몰두한 자들의 막말과 조롱 대상이 되고 있다. 아직도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헛소리만 지껄이는 자들은 또 무엇이며, 또 이런 작태들이 비단 광주만의 일이겠는가. 

한껏 높아진 국격

곰곰 되짚어보면 이번에 대한민국이 세계의 칭송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딱히 코로나 방역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질 좋은 우리 상품이 세계 안방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촛불이라는 평화적 시위로 국정농단을 종식시켜 민주주의의 새 양태도 보여줬으며, IT 세계최강국을 자랑하고, 한류라는 거센 문화바람이 지속적으로 오대양 육대주로 불었다. 한글의 우수성이 알려졌고, 우리말을 배우려는 세계 젊은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BTS의 인류 보편적 감성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흥남부두에서 자식과 생이별한 ‘덕수’의 아버지는 짐작조차 했을까.
이 얘기들은 단순한 자화자찬의 ‘국뽕’이 아니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한 번 짚어보자. 이제 우리는 진정 선진국이 된 것인가. 또, 선진국이란 어떤 나라를 말하는가.
한민족 5천년사, 우리 착한 백성들은 한 번도 떵떵거리며 살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숱한 역경과 고난의 역사였다. 물론 우리 역사에는 대륙에 맞서 기개를 올리던 고구려의 기상이 우뚝 하고, 백제가 해양대국으로 강역을 넓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터전이 만주 평원을 떠나온 이후로는 이렇다 할 족적이 거의 없는 역사를 보인다. 물론 국난에 직면해서는 온 백성이 똘똘 뭉쳐 외세의 침략을 잘 막아내기도 했고, 문화적으로도 상당 수준을 구가하기도 했지만, 정작 뭇생명들의 공영에 이바지할 큰 살림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림자도 짙다지만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광복이나 한국전쟁 이후를 우리의 현대사로 잡을 때, 지난 70여 년은 격변과 격동의 시간이었다. 이제 이만큼이나마 이뤄놨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지만은 아니하다.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유례없는 성장과 번영을 이룩한 건 맞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OECD국가 대비 국민행복지수, 사회적 갈등지수, 자살률, 노인빈곤률, 산재사망율 등의 지표가 최하위 수준을 맴돈다. 잘 사는 건 맞지만, 진짜 잘 사는 건지는 글쎄다. 헬조선이니, 7포 세대니 하는 말이 횡행하고, 세대갈등, 젠더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 노사갈등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상호 불신도 만만찮다. 지난 70여 년의 우리 삶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도 팽배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여전히 우리 삶 한쪽에 도사리고 있다.

인류 공영의 큰 비전으로

다시 묻자. 우리는 이제 진정 선진국인가. 다른 나라들의 칭송에 합당한 자격을 제대로 갖췄는가. 보통 선진국이라 하면 경제적 지표로 규정한다. 부자나라를 말한다. 이런 지표로는 우리도 이미 선진국이다. 하지만 ‘진짜 살기 좋은 나라’ ‘살 맛 나는 세상’ ‘다른 나라가 진정 우러러보는 나라’ 이런 의미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70년 우리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몸집이 어른이 됐다고 진짜 어른이 된 건 아니다. 몸집에 걸맞는 생각의 성장도 꼭 필요하다. 아니면 힘 센 건달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생각의 성장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지금 우리 사회가 노정하는 온갖 어두운 그림자들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도기적 성장통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지혜를 모을 때다. 
우리가 그럴 역량이 되냐고 반문한다면, 이렇게 답한다. 위기에 빛을 발한 우리 5천 년 역사를 보라고. 보통 때는 그다지 훌륭한 민족같지 않아도 위기가 오면 빛나는 저력을 발휘해 새 세상을 열어놓는 저 큰 힘을 보라고. 국난 때마다 의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킨 숱한 의병들이 그러했고, 풍찬노숙을 마다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했으며, 가까이는 IMF 금반지가 그랬고, 월드컵 4강 신화의 ‘대~한민국’이 그랬다. 이번 코로나에 맞선 국민적 정신도 마찬가지다. 
위기 극복의 저력을 더 큰 비전으로 승화시켜, 그냥 선진국이 아닌, 세계를 이끌어 갈 선진국이 되자. 화합과 포용의 정신으로 작금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화해시키고, 지역 균형발전과 사회적 대타협도 이끌어내자. 동북아 균형론에 입각한 남북통일은 세계평화를 위한 초미의 과제다. 
이 모든 과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칫 지구 생태계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는 인간들을 향해 던지는 각성의 메시지다. 이 무도한 시대가 우리 민족에게 부여한 특별사명이다. 특히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의 무한 가능성을 믿고, 인류 평화와 공영을 기약할 큰 꿈을 꾸자.   

전인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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