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대메뉴로 바로가기 서브메뉴로 바로가기

[지인호 칼럼] 자동차 안전벨트의 역사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안전장비

20200531일 (일) 16:06 입력 20200531일 (일) 16:12 수정

  • 축소
  • 확대
  • 이메일 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보내기
  • 트위터 보내기

만물상회

 

1886년 독일의 칼 벤츠가 자동차를 최초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30년대에는 길도 반듯하게 뚫리지 않았지만 크게 향상된 자동차의 성능을 바탕으로 경주를 했다. 길을 달리다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거나 웅덩이를 지나면 차 안에 있던 사람이 튕겨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자동차 레이싱을 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안전벨트를 만들어 달았다. 이것이 비공식적인 자동차 안전벨트의 시작이다. 1935년 아우토반이 건설되면서 속도경쟁은 더욱 가열되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다름슈타트까지의 구간은 활주로 기능도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이 구간에서 레이서들이 속도경쟁을 벌였다. 이때에도 사람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하는 장치로 안전벨트를 만들어 달았다. 1936년 스웨덴의 볼보 직원이 아우토반에서 안전하게 달리기 위해 2점식 안전벨트를 장착한 것이 공식적인 자동차 안전벨트의 시작이라고 한다.

 


- 볼보는 세계 최초로 
3점식 안전벨트를 개발했다.

 

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도입

 

하지만 이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안전벨트가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1951년 벤츠와 GM은 시판용 차에 2점식 안전벨트를 적용했다. 1955년에는 포드가, 1957년에는 볼보가 안전벨트를 도입했다. 특히 포드는 베트남 전쟁 때의 미국 국방장관으로 유명한 로버트 맥나라마가 앞장서서 2점식 안전벨트를 적극적으로 보급하였다.

1950년대 초반, 자동차는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고 거리에는 4,000만 대의 자동차가 굴러다녔다. 그러나 19521월에 개최된 미국 자동차딜러협회의 35회 연례회의에서 BF골드리치 타이어 회사의 한 부사장은 활발한 자동차 교통이 언젠가 종말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만약 교통사고 사망률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자동차 업계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운전을 포기할 것이다."

1950년 한 해에 4,000명가량의 미국인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에는 주행거리가 지금에 비해 훨씬 짧았다. 마일당 사망률로 따지자면 1950년의 사망률은 오늘날의 다섯 배에 이른다.

맥나라마는 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에 갔으며, 그곳에서 젊은 회계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그는 군대에 자원했고, 뛰어난 분석 능력 덕분에 육군 항공대의 통계청에 자리잡았다. 전쟁이 끝나자 포드 자동차사는 맥나라마에게 자동차 산업에서 그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달라고 요청했다. 맥나라마는 하버드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와 그의 아내는 소아마비를 비롯한 다른 병들 때문에 엄청난 액수의 의료비 청구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맥나라마는 포드가 제의한 일자리를 받아들였다.

코넬대학의 항공학 전문가들이 항공기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맥나라마는 그들에게 자동차 사고에 대해서도 연구해줄 것을 의뢰했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재질로 감싼 인간의 두개골을 코넬대학 기숙사 계단에서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인간의 신체가 자동차 내부에 사용되는 단단한 물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연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맥나라마는 새로운 포드 모델에 더 안전한 운전대를 설치하고 계기판에는 패드를 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동차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승객이 자리에서 튕겨나가 머리를 부딪치지 않을까 우려하기보다 아예 몸이 날아가지 않도록 안전벨트를 다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맥나라마는 포드사에서 생산하는 모든 차량에 안전벨트를 설치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텍사스에 있는 조립공장으로 날아갔다. 매니저와 비행기 안에서 만났는데, 내가 안전벨트를 매자 그가 말했다. '왜요? 내 운전 솜씨를 못 믿는 겁니까?'"

매니저가 한 말은 안전벨트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맥나라마의 상사들도 안전벨트는 '불편하고 지출을 늘리는 허튼 수작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맥나라마의 의견을 따라 새로운 포드 모델에 안전벨트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볼보, 안전벨트 특허권을 포기

 

그런데 2점식 안전벨트는 충돌할 때 머리나 가슴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단점을 개선하고자 스웨덴 볼보의 사장인 거너 엔겔라우는 스웨덴 사브에서 비상 탈출 좌석을 개발한 항공기 안전장치 엔지니어인 닐스 볼린을 채용했다. 닐스 볼린은 전투기의 비상 탈출 좌석에서 착안해 안전벨트를 개발했다.

닐스 볼린의 연구로 1959813일 볼보는 자사의 아마존 120, PV544 모델에 세계 최초로 3점식 안전벨트를 적용했다. 이때 발표한 3점식 안전벨트는 현재 사용하는 안전벨트와 거의 똑같은 모양을 가졌다. 신체 중에서 충격을 잘 흡수하는 골반과 가슴뼈를 고정시키고, 사람이 차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역할도 했다.

볼보는 3점식 안전벨트를 개발한 뒤 "사람의 안전을 위해 만든 것이니 특허를 낼 수 없다"며 특허 신청을 포기하고 다른 자동차 회사들에게 무료로 이 기술을 배포했다. 그들에게는 천문학적인 금전적 이득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 전세계 모든 승용차 좌석에는 볼보가 개발한 3점식 안전벨트가 기본적으로 달려 있고, 탑승자를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있다.

미국 국회는 1960년대 중반 연방 안전 기준을 제정하기 시작했지만 15년이 지난 뒤까지도 안전벨트 착용률은 11%에 불과했다. 그러나 안전벨트 착용률은 시간이 지나면서 교통 위반 딱지와 광범위한 공공 캠페인, 안전벨트를 매지 않을 경우 요란하게 반짝이는 불빛이나 경고음 등 다양하고 자그마한 여러 조처들에 힘입어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안전벨트를 매는 행위와 운전자의 운전 실력이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자 안전벨트는 사회 전반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안전벨트 착용률은 1980년대 중반에 21%까지 상승했고, 1990년에는 49%에 달했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61%까지 증가해 오늘날에는 80% 이상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마일당 교통사고 사망률이 크게 하락할 수 있었던 가장 중대한 요인이었다. 안전벨트는 교통사고 사망률을 70%나 낮추었고 1975년 이래 25만 명의 생명을 구하였다. 물론 아직도 교통사고는 연간 4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지만 최소한 운전은 더 이상 위험한 행위가 아니다. 사망자 수가 여전히 높은 이유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자동차 안에서 연간 약 5조 킬로미터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환산하자면 1,0002,000킬로미터당 한 명꼴로 죽는 셈이다. 이는 어떤 사람이 시속 48킬로미터의 속도로 24시간 내내 운전한다고 치면 자동차 사고로 죽기 위해서는 28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운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당 가격이 25달러에 불과한 안전벨트는 역사상 고안된 모든 발명품 가운데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안전장비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미국의 모든 자동차에 안전벨트를 설치하는 데 든 비용은 약 5억 달러로, 이는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데 약 3만 달러가 들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에어백처럼 훨씬 복잡한 안전장치는 어떨까? 미국에서 연간 40억 달러의 비용이 에어백에 지출되는데, 환산하면 한 명의 생명을 구하는 데 180만 달러가 든 셈이다.

130여 년의 자동차 역사에서 안전벨트의 역사는 대략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자동차 전문가들은 안전벨트가 전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고 평가한다. 유럽에서는 안전벨트 착용으로 교통사고 사망률이 40% 감소했고,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10년 동안 미국에서 안전벨트가 구한 생명은 5만 명이 넘고 130만 명이 부상을 피했다고 한다.

 

- 지인호 사회문화평론가



지역 칼럼
  • 이전
    이전기사
    [전인철 칼럼] 밥으로 살지만 뜻도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