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즐거움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먼저 든다. 올해는 어떤 내용으로 교사들을 비난하는 뉴스가 나올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교육부나 교육청은 변함없이 학교로 스승의 날 행사 안내 공문을 보낸다. ‘스승 존경 및 제자 사랑 풍토 조성, 교육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행사로 소통과 신뢰의 학교문화 조성, 사제존중 미담사례의 발굴과 홍보를 통한 공교육 신뢰도 제고’ 라는 뻔한 내용이다. 학교 단위로 소통․공감 행사를 운영하라고 하면서 ‘추억의 선생님께 감사전화 드리기, 종이 카네이션 접어 담임선생님께 달아드리기, 감사 영상 만들어 학급홈페이지 등에 공유하기, 4행시 짓기, 코로나19 시대를 반영하여 쌍방향 수업 시 반별로 ‘스승의 은혜’ 노래 함께 부르기, 온라인 수업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사랑해요’ 표현(말, 몸짓 등)하여 따뜻한 마음 공유하기’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스승에 대한 감사 활동을 교사가 직접 수업으로 해야 하는 일은 민망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그래서 교사들은 어색한 학교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
기껏 교사들을 위해서 문화공연 관람 후 SNS에 후기 공유하기(공유는 왜 하게 할까? 혹시라도 근무시간 중에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의심해서?), 교직원 체육대회로 소통과 힐링의 시간 가지기(체육대회를 좋아하지 않는 교사들은 어쩌지?)를 제시하고 있다. 지역사회 스승 공경 및 제자 사랑 풍토 조성을 위해 스승 공경 현수막 달기, 공문서 상단 홍보 문구 게재 활용, 스승 찾기 운동 전개, 스승 찾아뵙기, 안부전화, 모교 방문 후배 격려하기 등을 제시하고 언론사에게는 스승 관련 미담사례 기획보도를 해 달라고 하지만 정작 교사들에겐 관심 밖이다. 그냥 모든 교사들이 의미를 갖고 즐거워할 수 있는 날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촌지로 한창 시끄러울 때 스승의 날에 맞추어 교문 앞에서 감시를 하고, 감사반에게 책상까지 수색당한 경험을 가진 교사들은 스승의 날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했던 것 시절을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교육청에서는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 존중 풍토를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그런 풍토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86년 1월 5일, 중학교 3학년 한 소녀가 죽었다. 유서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세상에 알려졌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중략)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호소에 1986년 5월 10일, 전국의 교사들은 “학생들과 함께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우리 교사들은 오늘의 참담한 교육현실을 지켜보며 가슴 뜯”으며 ‘5.10교육민주화선언’으로 답을 했다. 이후 교사들은 1987년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를 결성하였고, 1989년 공안정국을 뚫고 1,500여 명의 교사들이 해직을 각오하거 전교조를 결성하였다. 그 단 하나의 이유는 모든 교사들이 교사로 살고 싶었던 절실함이었다. “맹목적인 복종을 단호히 거부하고 교사의 단결을 기초로 교사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생 교육을 정상화하며, 학부모의 올바른 교육적 요구를 받아들여 이 시대 이 땅의 참된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또한 올해는 1987년 6월 항쟁으로도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를 위해 1991년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이 죽음으로 맞선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전교조는 다시 5.10교육민주화 선언 기념일에 맞추어 ‘폭력정권 살인정권 노태우정권 퇴진하라’는 강도 높은 성명을 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우리 교육운동사에서 1986년 5.10교육민주화선언은 1960년 4.19 교원노조 탄압으로 숨죽여 왔던 교사들이 다시 교사로서 바로 서게 만든 시작점이었다. 그래서 전교조는 오래 전부터 스승의 날보다는 교사들이 스스로 탄압을 각오하면서 교사로 바로 서기 위해 초임교사가 될 때의 첫 마음을 되새기고 다시 다짐하는 교사의 날로 바꾸거나, 아니면 교육 주체들이 잔치를 벌이고, 교육의 미래를 모색하는 ‘교육의 날’로 바꿀 것을 요구해 왔다.
교사들에게 스승의 날은 참 무거운 날이다. 스승의 날 전후로 터져 나오는 교권과 학생의 인권이 대립하는 언론 보도에 교사들의 자긍심은 무너져 갔다. 교사들은 스승으로 부르지 않아도 좋으니 국군의 날이나 경찰의 날처럼 그냥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노고에 감사하고 위로하는 날 정도로 편안하게 지내길 바라고 있다. 교사들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이데올로기인 ‘스승’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가 만들어 온 독특한 구조에서 교사뿐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불편한 날이다.
교사들과 학교를 둘러싼 교육 모순은 아직도 여전할 뿐만 아니라, 전교조 등을 통한 교사들의 요구와 노력에 비해 해결의 길은 멀기만 하다. 학벌은 특권이 되었고 교육은 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사회의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불평등 사회에서 온갖 교육혁신 정책도 입시경쟁 시험 대비에 치우쳐 버렸다. 학생들에게 입시 위주의 지식을 잘 주입시키는 교사를 뛰어난 교사로 판정하게 만드는 교원성과급, 교원평가, 승진구조 역시 변하지 않고 있다. 타 시도교육청이 혁신학교 등의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대구는 그런 혁신학교나 미래학교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교사들은 답답하다.
최근 들어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집요한 민원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로 등교일수가 적었던 2020년에 민원 발생이 가장 적은 해였다. 올해 전면등교가 시행되면서 민원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어느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당했다더라, 담임이 교체되었다더라, 병가에 들어갔다더라.’와 같은 소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소문은 교사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학교와 교사는 긴장하게 되면서 교육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문제가 장기화될수록 회복으로 가는 길은 험난해질 뿐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학부모에 의한 민원 처리를 위한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여 문제 해결의 방법을 제공하는 매뉴얼을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어느 학교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관계회복과 학생의 성장, 발달을 돕는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청 변호사와 심리상담사, 장학사(전문 교사), 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문제해결 지원단’ 구성을 시급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학교에 문제가 생기면 이 지원단이 바로 출동해서 사실을 확인하고 해결방안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례의 경우 이미 관계가 더욱 악화된 상태에서야 교육청이 개입하고, 개입해서도 대부분의 경우 교사들의 일방적인 양보나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교사의 자존감과 학교의 사기와 교육력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런 교육 모순이 쌓여있는 가운데 교사가 ‘스승’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형식적인 ‘스승의 날’은 더욱 반갑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백년지대계인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교사 스스로 참교육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더 나은 교육을 다짐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어 주기를 요구한다. 또한 교육정책에 교육현장의 고민과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정치기본권과 노동기본권이 온전히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21세기 기후위기의 시대에 학생들은 지구생태민주시민으로 자라나야 한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 교사들은 입 막히고 손 묶여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스승의 날을 즈음한 일회성 행사보다는 민원에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 제작과 전문가 문제해결 지원단 구성이 교사들에게 더욱 절실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경쟁과 혐오, 그리고 무기력이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개선하는 일도 크고 복잡한 과제이지만, 기후위기와 코로나19가 가져온 대전환의 요구 역시 무시할 수 없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기후위기 환경 재난시대를 극복하고 ‘OECD교육2030’에서 요구하는 ‘학생의 변혁적 주체성’을 가진 생태민주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교육하는 것은 더욱 절실해졌다.
전교조 대구지부는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5.10교육민주화선언의 정신을 잇고 전교조 강령과 참교육 실천 강령을 되새기며 조합원들이 앞장서서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 전교조 조합원들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확립과 교육민주화 실현을 위해 더욱 굳게 단결할 것이다. 교사를 교사로 살도록 만드는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과 민주적 권리 획득 및 교육여건 개선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교사들과 행정직, 공무직원 등 모든 교직원들 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적극 연대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2021년 5월 1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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