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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하냐고요? 우리 학교가 최고예요”

[기자가 만난 사람] 산청간디고등학교 정인욱 군 인터뷰

20150814일 (금) 09:5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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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폭력, 우울증 심지어 자살까지. 서글픈 현실이지만 학교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한해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만 6만 명에 이른다. 배움으로 채워져야 할 학교가 누군가에게는 지옥이다. 이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교육을 찾는 시도 또한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이들은 대안학교를 찾는다.
대안학교에서는 어떤 것들을 배우는지 학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한 대안학교 재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5일, 3지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인욱 군은 올해 18세,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산청간디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산청간디고등학교는 전국적으로도 가장 많이 알려진 대한민국 최초의 대안학교다. 97년에 설립돼 다양한 교육적 실험을 해온 지 오래되기도 할뿐더러 고등학교 과정이 인정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비인가 상태로 운영 중이다. 학생들은 별도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탓에 산청간디학교는 매년 입학 경쟁률이 5대 1에 육박한다. 한 학년에 40명을 선발하는데 매년 열고 있는 입시설명회는 늘 인파로 넘친다. 선발 기준도 독특하다. 성적이 30%, 부모와 학생 자기소개서 각 30%, 추천서 10%가 반영된다. 사실상 부모와 학생의 자기소개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 군도 처음부터 간디학교를 목표로 했던 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어머니의 권유로 간디학교에서 개설하는 계절학교를 열흘 정도 체험했는데 이때 경험이 너무 좋아서 입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 어머니가 간디학교를 소개했을 때는 사실 별로였어요. 그러다가 호기심에 계절학교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어요. 학교 분위기도 좋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가 느껴졌어요. 당연히 왕따나 폭력도 없어요. 그때부터 목표가 생긴 셈이에요. 입학을 위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준비를 차근차근했어요.”
인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간디학교의 교육과정은 역시 일반적인 학교와는 사뭇 다르다.
 

일반 교과목의 경우 주로 1학년 과정에서 소화하고 2학년부터 확연히 달라진다. 대학처럼 선택제 수업으로 구성되는데 학생들의 의사에 따라 선택하는 과목을 배우게 되며 자기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는 과제 연구 수업도 있다. 3학년이 되면 주로 인턴십 과정을 하게 되며 별도로 졸업 작품 준비도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아리와 이동수업이다.
“5시에 모든 수업이 마치고 나면 식사를 하고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까지 나머지 시간은 동아리 활동을 해요. 저는 축구랑 경당 두 가지를 하는데 동아리가 너무 많아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어요. 그리고 모든 학생은 시기별로 이동수업을 하게 되는데 공통으로는 매년 한 차례씩 농활과 지리산 종주에 참여해요. 거기다 학년에 따라 제주도 도보여행, 네팔 해외학습도 가는데 올해는 아쉽게도 메르스로 모두 취소돼 방학을 일찍 했어요.”
 

그런데 이런 간디학교의 다양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입학하고 가장 학교에서 인상적인 것을 물으니 조금은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간디 학교 입학하고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바로 식사예요. 학교에서 먹는 급식이 너무 좋아요. 솔직히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보다 더 맛있고 좋아요. 튀김류가 없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식단은 물론 맛도 최고예요.”
 

간디학교의 식사는 자율급식으로 운영되며 학교 내에서 학생들이 직접 경작하는 텃밭의 재료를 포함해 거의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학생들이 직접 설거지까지 한다. 자연히 잔반도 거의 없다.
 

“물론 가장 인상적인 건 바로 자유로움이에요.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죠. 우리 학교는 규칙도 학생들이 스스로 정해요. 식구총회라고 해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중요한 사안들을 함께 결정하는데 몇 해 전까지 있던 공동체 규칙조차 선배들이 여기서 없애버리는 통에 지금은 더 자유로워졌어요.”
 

간디학교의 식구총회는 실제로 학교의 제반 모든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구다. 생활에서부터 민주적 의사결정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군은 현재 학교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주변에서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권할만한지 물었다.
 

“만족도로 따지자면 최고죠. 무엇보다 함께 부대끼고 살면서 서로 간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잘 만드는지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 덕에 성격도 활달하게 변하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지내게 됐어요. 자기 맘에 들게 살고 싶다면 꼭 오라고 권하고 싶어요. 특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얼마든지 그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후회했던 순간이나 아쉬움도 없지 않을 것 같았다. 대안학교를 선택하고 어떤 점들이 부족하다 싶은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른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은 있어요. 주류에서 벗어난 느낌 같은 거죠. 하지만 방학에 집에 와서 동네 학교를 다니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뭐랄까 대학을 항해서만 달려가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 모습이 안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나는 다른 길을 가고 있구나 싶기도 해요.”
 

일반적인 주류의 흐름에서 벗어난 것 같다는 불안감은 어쩌면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부담인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학교생활에 대한 계획과 진로에 관해 물었더니 여전히 고민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학교라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여건이 되는 건 맞지만, 아직 찾지는 못했어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는 건 대학에 가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남은 학교생활에서 열정을 쏟을 대학을 찾고 싶어요.”
 

아직 진로를 찾지 못했다고 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고민하는 모습만으로도 정 군은 충분히 어른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대안학교가 진정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교육에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여전히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지만 인욱 군은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우선 당사자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남는 만남이었다.  

 

강북신문 김지형 기자
earth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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