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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춘을 독립에 바치고 광복의 빛을 보다

[강북위인전] 정명준

20160414일 (목) 00:5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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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에서 태어나 고향과 대구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 정명준은 진우연맹 조직에 동참하고 연맹 내 파괴단을 만들어 일제 주요 관서와 점포 폭파 등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 스물다섯, 독립운동을 시작하다

 

정명준(鄭命俊)은 1900년(광무4)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정명준은 성품이 강직할 뿐 아니라 도량이 넓고 재주와 기억력이 뛰어나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의 고향인 지천면 신리는 칠곡IC에서 차량으로 불과 15분 거리다.


정명준이 스무 살이 되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날로 온갖 횡포를 더해갔고 각처에서는 이에 항거하는 배일사상이 활발해져 갔다. 그런 가운데, 1924년 정명준의 독립운동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같은 해 7월, 그는 뜻을 함께하는 청년 동지를 모아 <혁조(革潮)>라는 잡지 발행을 계획한다. 그러나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인가되지 않았다. ‘혁조’의 발자취는 거의 남겨져 있지 않은데, ‘동아일보’ 1925년 7월 31일 자에 보면 “대구에서는 청년 동지가 모하여 ‘혁조’, ‘현대여성’의 월간잡지간행을 경영한다는데 방금 창간호 준비를 착수, 진행 중이며 양 잡지는 김홍묵 씨가 주간하고 홍광영제 씨가 보좌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아일보’ 1925년 7월 31일 자


그리고 노동공제회에서 활동하던 정명준은 이곳에서 함께 활동하던 신재모, 서동성, 방한상 등과 더불어 1925년 9월 대구에서 항일 운동 단체 ‘진우연맹’을 조직했다. 이들은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하고 무정부주의 사상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위해 진우연맹을 조직했다.


앞서 ‘신재모 편’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진우연맹은 일제의 탄압에 맞선 국내 무정부주의자들의 대표적 항일 독립운동 단체였다. ‘아나키즘’이라 불리는 무정부주의 운동은 모든 제도화된 정치 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이다. 이 연맹은 회원이 1,100여 명에 달하던 대구노동친목회를 아래에 두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이들은 대구노동친목회를 지도하면서, 일본의 무정부주의 단체와 연계를 강구하는 등 다양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 정명준, 진우연맹, 그리고 파괴단

 

진우연맹은 권력과 탄압을 배척하기 위하여 진우연맹 안에 별동대로 ‘파괴단’을 조직했다. 파괴단은 일제의 교란 암살은 물론, 중요 기관 파괴를 계획하고 활동하는 무장투쟁 단체였다.


1926년 4월 12~13일 정명준 등 일동은 신재모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파괴단을 만들어 조직했다. 이들은 조직 후 2년 안에 대구 부내의 도청·경찰서·우체국·법원을 비롯하여 일본인 점포를 파괴하는 한편 지사·경찰부장·관아 수뇌부를 암살할 것을 계획했다.


이러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폭탄이 필요했다. 이들은 중국 상해의 무정부주의자 유림을 통해 폭탄을 입수하기로 했는데, 연맹원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가택 수색 결과 전모가 드러나 결국 무산되었다.


이 일로 인해 1926년 7월 파괴단은 일경에게 붙잡혔다. 유림 등으로부터 무기를 반입하기로 한 사실까지 일경에 탐지되어 정명준 등은 1927년 7월 5일 대구 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정명준의 독립운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출소 후 그는 일경의 눈을 피해 함경북도의 청진에서 상업에 종사하면서 광복을 맞을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복 후에는 지역의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경북신문 편집국장, 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주필, 대구일보 편집국장 및 주필, 영남일보 편집국장 및 주필 등을 역임했고, 1959년 8월 영남일보 재직 중 60세의 나이로 순직했다.

 

 

 


정명준은 생존하던 1958년 제3회 경북 문화상(언론부문)을 수상했고, 정부로부터 1977년에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정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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