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대메뉴로 바로가기 서브메뉴로 바로가기

[전인철 칼럼] 심력으로 살면 힘이 난다

20220905일 (월) 07:41 입력

  • 축소
  • 확대
  • 이메일 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보내기
  • 트위터 보내기
함사세요  
함께사는 세상이요~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시간 앞에 무력해졌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매년 널뛰는 더위와 추위로 굴곡지는 생활이지만, 푹푹 찌는 열기도  헤집고 살다 보면 어느새 산들바람 소슬한 가을이 오게 마련인 것이다.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 한 방울이 가슴골 한복판을 느끼게 해주던 때가 어제인데, 오늘은 또 어김없이 그 느낌이 기억 저편으로 물러간다. 면면히 흘러가는 시간은 우리를 늘 새롭게 한다. 그 새로움에서 감사와 행복을 감지할 수 있다면 그만큼 삶은 충만해지리라. 

쉽고도 어려운 삶
산다는 게 어떤 때는 참 쉽게 느껴지고, 또 어떤 때는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어릴 때 그 느낌이랑, 젊어서 그것이랑, 나이 들어 그것이랑도 또 많이 다를 듯하다. 삶이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거다 싶다. 누구는 인생의 맛이란 쓴맛이라 했다. 그럴 듯하다. 삶은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으니까 말이다. 물론 인생에 쓴맛만 있는 건 아니다.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매운 건 사실 맛이 아니라 자극이지만, 우리는 비유적으로 매운맛이란 말을 쓴다. 분명 삶은 매울 때도 있다. 누구에게나) 등등 오만가지 맛이 육만가지 비율조합으로 우리네 삶을 직조한다. 쓴맛 속에도 단맛이 있고, 매운맛 속에도 울림이 있으니 삶이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맛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니 좌절 했다가도 다시 일어서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것 아니겠는가. 
삶이란 게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느낌 만해도 그렇다. 진짜 그런가. 기실은 내 뜻대로 된 일도 많은데, 그런 일은 잘 감지가 안 되고, 내 뜻대로 안된 일이 더 뚜렷이 느껴져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아닐까. 내 뜻대로 된 일은 당연히 그렇게 될 일이 된 것이기에 인지(認知) 자체가 잘 되지 않고, 잘 안된 일만 눈에 밟혀 불만이 이는 건 아닐까. 
예를 들어 무더위에 바깥 외출 후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시원하게 마신 경우를 보자. 내 뜻대로 됐다. 무슨 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 경우 우리는 대부분 아~감사한 일이네, 라고 느끼기보다는 그냥 시원해 좋네, 정도로 느낀다. 냉장고에는 늘 시원한 물이 있었고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냉장고를 열었는데도 찬물이 없을 경우 짜증날 일이지. 

짜증 부려 본들 
살면서 짜증나는 일은 참 많다. 화나는 일도 많다. (사실 짜증은 약한 화다.) 냉장고 찬물 같은 사소한 일말고도 우리 일상은 짜증나는 일들로 점철된다. 열정과 격변과 조급함과 무한경쟁과 어딜 가도 넘쳐나는 사람들로 전쟁터 같은 세상을 사는 한국사회는 더 그렇다. 가령 아침부터 회사에 지각할 판인데 도로는 꽉 막혀 꼼짝도 하지 않는다거나,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취직 면접에서 또 낙방했다거나, 영원히 함께 하자던 애인이 느닷없이 이별을 통보한다거나, 꼭 지애비 닮아 말도 안듣는 자식이 사고를 친다거나, 등등 내 뜻대로 안 되는 일  투성이다. 세상은 또 어떤가. 입만 열면 거짓말인 정치인들은 제 밥그릇 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이웃 일본은 늘 뻔뻔한 소리로 적반하장이고, 장바구니 들고 마트 가기가 겁나게 물가는 오르고, 내 월급만 안 오르고, 학창시절 나보다 공부도 못하던 놈이 어찌된 영문인지 벼락부자가 되어 외제차를 타고 나타나 떵떵거리고, 일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엉뚱한 지시만 내리는 직장 상사는 오늘도 꼰대 잔소리로 침이 마를 줄 모르고, 도대체 맘에 드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뉴스 보기가 겁난다.         

잘 살고 싶은데
물론 반대되는 일도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 잠깐 보자. 내 삶이 그리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된다고 다 좋은 일인가.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리 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짜증낼 일이 아닌 일에도 짜증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짜증 낸다고 일이 해결될까. 내 기분만 나빠지고, 또 상대와의 관계만 나빠지는 건 아닐까. 오히려 열받아서 사태판단을 그르치는 건 아닐까.   
삶이나 일이 내 뜻대로 된다 할 때 그때 ‘내 뜻’은 ‘잘 살고 싶은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리라. 동물은 그냥 산다. 하지만 인간은 그냥 살긴 어렵다. 인간은 잘 살려 한다. 그 관성에 사로잡혀 심지어는 더 잘 살려 한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잘 살기. 사실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세상 현실과도 맞아야 하고, 내가 생각하는 잘 살기라는 게 정리도 좀 돼 있어야 하고, 지속가능해야 하며, 사회적 의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수행할 내 능력도 필수다. 맘 먹는다고 다 잘 살아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삶은 쉽고도 어렵다. 그냥 살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는 말이다.

만족하는 삶
미국의 행복심리학자 셀리그만은 잘 산다는 일에 대해 세 측면을 얘기한다. 우리도 대충 아는 이야기지만,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는 즐거운 삶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 먹고, 재미있는 영화보고, 가고픈 곳을 여행하고 재미있게 사는 삶이다. 이런 행복은 짜릿함은 있지만 그만큼 쉽게 질린다는 맹점도 있다. 무한 말초적 자극을 추구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둘째는 좋은 삶이다. 열심히 일하고, 적당히 여가도 즐기고,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일상적 삶이다. 첫 번째의 즐거운 삶이 재미를 추구한다면 이 두 번째 좋은 삶은 상대적으로 몰입을 지향한다. 뭔가에 푹 빠져 열정을 내는 것, 이런 몰입 상태를 오래 자주 갖는 게 행복이라는 얘기다. 
마지막 셋째는 의미있는 삶이다.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셀리그만은 자신의 재능으로 다른 사람에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삶이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양태가 있겠다. 각자의 재능이 다 다르고, 그걸 전달하는 방식도 다 다를 것이니까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의미는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셀리그만은 이처럼 행복을 세 측면으로 조망하면서, 행복한 삶과 만족스런 삶을 구분한다. 좋은 삶이나 의미있는 삶은 만족을 가져다 주지만, 즐겁기만 해서는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물론 셋 다 이룩하면 가장 좋겠지만, 비록 그리하진 못하더라도 즐거움만 추구하는 삶의 한계는 분명하다 하겠다. 이는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원래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말이리라. 

그는 왜 달렸을까
22세의 캐나다 육상선수 테리 폭스는 골수암으로 다리를 절단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암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고자 의족을 낀 채 캐나다를 횡단키로 했다. 동부 해안을 출발한 그는 온타리오 주 선더베이까지 와서는 너무 쇠약해져 더 달릴 수가 없었고, 결국 거기서 생을 마감한다. 폭스의 용기와 헌신에 감동한 돈 마스라는 44세의 우체부가 나머지 구간을 이어 달렸다. 그는 임파선 결절암 환자였다. 그는 94일간 3,400km를 달려 마침내 태평양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그 머나먼 길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 도로변에서 박수로 격려한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낯모르는 사람들의 친절과 응원은 줄을 이었다. 그 중에는 어린 암환자도 있었고, 가족을 병으로 잃은 사람들도 있었고, 인생을 큰 시련없이 살아온 사람도 있었고, 무뚝뚝하게 암 퇴치 기금을 내놓고 사라진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게는 남에게 도움을 주고 관대해지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다. 선한 마음 말이다. 세파에 시달리고 각박한 삶에 끄달려 그 선한 마음을 잠시 묵혀 두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선함을 목도하면 곧바로 반응하는 게 또한 사람이다. 삶을 내 맘에 맞추려고만 하진 말고, 내 맘을 삶에 맞추는 슬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체력으로만 살면 힘이 들고, 심력으로도 살면 힘이 난다. 정화된 마음 한 켠에서 소슬한 산들바람이 불어 온다.   

전인철 편집주간
   



지역 칼럼
  • 이전
    이전기사
    [전인철 칼럼] 시절이 하 수상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