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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호의 인문학 카페]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관한 불편한 진실(1)

최병천의 《좋은 불평등》을 읽고

20230705일 (수) 09:25 입력 20230705일 (수) 09: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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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은 8월말에 발간한 좋은 불평등에서 진보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진단하면서 오랫동안 지녀왔던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객관적인 근거와 통계를 바탕으로 논증하고 있다.

1992년에 출간된 교실밖 국어여행에서 저자는 "세상에 많은 책이 있지만 삶을 뒤흔들 단 한 권의 책을 누군가 찾는다면 바로 전태일 평전을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22년에 누군가 그런 책을 찾는다면 곧바로 좋은 불평등이라고 답할 것이다. 최병천이 밝힌 '불편한 진실'이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통찰하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병의 원인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 불평등도 사실에 기초하여 진단하지 않으면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없게 마련이다.

좋은 불평등은 진보 세력이 그동안 불평등의 원인과 대안을 잘못 짚어왔다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자료를 제시하여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최병천은 불평등을 하층 소득 대비 상층 소득의 격차로 정의한다. 상층 소득이 올랐거나, 하층 소득이 떨어졌거나, 중간층이 얇아지는 경우 불평등이 증가한다. 상층 소득이 떨어졌거나, 하층 소득이 올랐거나, 중간층이 두터워지는 경우 불평등이 감소한다.

이렇게 세분화하여 접근하는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불평등의 증가는 무조건 나쁜 것이고, 불평등의 감소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을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불평등이 각별한 점은 경제성장과 불평등을 종합적복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불평등/평등을 다음과 같이 4가지 경우로 분류한 것이다.

경제성장(소득 증가) + 불평등 증가 = 좋은 불평등

경제성장(소득 증가) + 불평등 감소 = 좋은 평등

경제후퇴(소득 감소) + 불평등 감소 = 나쁜 평등

경제후퇴(소득 감소) + 불평등 증가 = 나쁜 불평등

또한 저자는 한국경제 불평등의 3대 변곡점으로 1994, 2008, 2015년을 꼽는다.

1994년 변곡점에 영향을 미친 3가지 사건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21~2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19928월 한중 수교다. 2008년 변곡점과 2015년 변곡점에 영향을 준 것은 각각 글로벌 금융위기와 중국의 정책 변화이다. 3대 변곡점은 한국경제가 세계경제, 중국경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불평등을 이해하는 준거에 속한다.

 

불평등에 관한 5가지 통념

최병천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불평등에 관한 통념을 5가지로 집약하여 설명한다.

첫째, 불평등 확대 시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확대됐다고 본다. 압도적 다수 의견이다.

둘째, 불평등 발생 원인이다. 3대 적폐론으로 집약되는데, 재벌 편향 정책, 신자유주의 편향 정책, 비정규직 남용 정책이다. 이 경우,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은 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 재벌을 규제하고, 신자유주의와 반대 방향의 정책을 집행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

셋째, 정치권 책임론이다. 민주정부 10년과 보수정부 10년의 정책적 잘못이 불평등을 확대시켰다고 본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 해고와 근로자 파견제를 수용한 김대중 정부와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를 불평등 확대 주범으로 본다. 이런 인식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 내내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과 진보적 시민사회에 매우 폭넓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생각이다.

넷째,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다. 진보적 경제학자는 대부분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거꾸로, 불평등을 줄이면 그 자체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소득주도성장론은 불평등을 줄여 경제성장률을 제고한다는 논리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다.

다섯째, 한국경제 불평등은 국내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됐다고 본다. 국내적 요인 중에서도, 역대 정부의 정책을 불평등 확대 주범으로 본다.

이러한 통념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탄탄하게 입증하고 있다.

통념은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이나 생각을 뜻하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통념도 달라진다.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로 대체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통념이 바뀐 가장 획기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불평등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한국경제와 불평등 문제에 대한 인식의 틀, 패러다임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 시작은 1997년 외환위기부터 불평등이 확대되었다는 통념을 뒤엎는 것에서 비롯된다.

 

불평등이 증가하는 시점은 1994

최병천은 좋은 불평등에서 한국경제 불평등에 관한 5가지 통념이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한국경제 불평등에 관한 1997년 외환위기 기원설은 타당한 것일까?

한국경제 불평등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1980~2015년의 임금 지니계수(불평등을 측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 추이에 따르면, 불평등이 증가하는 시점은 1994년이다. 1980~1994년에 불평등은 꾸준히 감소한다. 그리고 1994년을 최저점으로 불평등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세계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까지 계속 증가한다. 흥미로운 점은 2008년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했는데, 오히려 이후 2년간 한국경제 불평등은 줄었다는 것이다. 2011년에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불평등은 2015년을 최고점으로 최근까지 줄어들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1994년부터 불평등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적 사건과 국제적 사건 3가지가 맞물려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3가지 사건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21~2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19928월 한.중 수교다.

19877~9월에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고 나서 제조업의 임금이 급격히 상승한다. 인건비가 많이 오르면 저임금 노동력에 기반한 저기술.노동집약적.수출.제조업은 심각한 경쟁력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중국에서는 19921~2월 덩샤오핑이 남순강화를 한다. 남순강화는 '남쪽 지방을 순방하며 주장하다'라는 의미이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는 개혁개방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이를 분기점으로 중국공산당 내에서 개혁개방 노선이 확고한 주도권을 갖게 된다. 그래서 1992년부터 수출노선의 전면화, 과감한 해외자본 유치, 경제특구의 대대적 확대, 과감한 규제 완화, 제조업 육성, 민간기업 육성을 추진했다. 남순강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이 채택된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99214.2%, 199313.9%로 상승한다.

1992824일 한.중 수교가 체결된다. 두 나라가 수교한 후 저기술.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은 중국에 가성비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1987~1992년 한국 제조업의 총 고용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30%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거치며 한국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약 17%로 줄어들었다. 이는 저숙련.노동집약적.수출.제조업에 종사하는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들은 제조업에서는 하단에 위치했지만 전체 노동시장에서는 '중간소득' 일자리에 해당했다. 중간소득 일자리의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바로 이것이 1994년부터 한국경제 불평등이 증가하기 시작한 진짜 이유다.



지인호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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