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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의 고전평론] 다시 고전을 읽다 - 논어(9)

천공과 전광훈, 누구 말이 맞나

20230810일 (목) 08:0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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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편 1-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진중하지 못하면 위엄이 없고, 학문을 해도 단단하지 못하게 된다. 진정성 있고 믿음직한 말에 힘쓰되,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 삼지 아니하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 (子曰, “君子不重, 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조금 느슨하게 풀어보자. 스승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지. “무리를 이끄는 리더의 언행이 오락가락하면 일단 말빨이 서지 않고, 자기 스스로도 내가 뭘 아네 해봤자 남들이 콧방귀를 낄 뿐이다. 세상을 이끄는 자는 매사에 정성을 다 하고 언행도 앞뒤가 맞아야 한다. 그릇이 좁고 못난 사람은 가까이 하지 말고, 혹시나 일에 실수를 하거든 그 잘못을 고치는 데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오늘 본문의 모든 이야기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즉 실수를 하거든 곧바로 솔직히 그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기에 힘써라, 로 모아질 수 있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인품이라면 언행도 믿음직하고, 사람 보는 안목도 꽤 괜찮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과즉물탄개, 이것만 잘 해도 좋은 사람이란 소리 들을 수 있고, 훌륭한 지도자란 말 들을 수 있다. 최소한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좀 믿어볼 만한 사람이 된다. 특히 조직의 리더나, 한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리더)가 되려면 최소한 이런 자세를 갖춰야 하고, 군자가 됐으면 최대한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수를 하고도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밍기적거리며 뭉개기를 하거나, 실수가 아니라 설사라고 우기거나 하는 자는 애당초 군주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실수를 하니 사람이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하나도 안 하는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신은 전지전능(全知全能), 즉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고, 무슨 일이든 다 잘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이 되고픈 본능이 있다. 자신의 무력함이 싫어서다. 그 본능의 과다경중은 있을지라도 누구나 기회만 되면 신이 좀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일단 어느 정도 신이 됐다 싶으면, 신이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는 착각 하에서 맘껏 그 힘을 행사한다. 높은 사람들의 갑질이 그거다. 특히 힘을 열망하는 기질이 강한 사람의 경우는 이 본능이 더 선명하다. 전지전능의 힘, 이걸 누가 거부하겠는가. 다만 오르지 못할 나무 같아서 묻어두거나, 조금 시도해보다가 잘 안되니 에이 그런 것 가져서 뭘 해하긴 하지만, 가족이나 친지 친구 동료 상사 부하 가릴 것 없이 세상 모든 인간관계에서 사소하고 미세하나마 이 본능은 늘 작동한다. 이를 지배욕이라 불러도 좋고 자기완결성 유혹이라 불러도 좋다. 타인이나 세상을 내 식대로 통제하려는 욕구. 그게 세상 질서를 제대로 잡는 일이라는 착각. 어쨌든 모든 인간 관계의 바닥에는 이 힘이 강하게 설친다.

 

나는 신이다

문제는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 일단 조금이나마 권력(꼭 정치권력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의지는 곧 권력이다.)을 획득하면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 같은 자뻑에 도취해 절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애당초 권력에 눈이 뒤집혀 실수를 인지하지도 못한다.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완벽은 깨진다. 무력감에 빠진다. 전지전능한 신이 어떻게 실수를 한단 말인가.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빈 마음과 힘의 열망으로 꽉 찬 마음은 함께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일은 참 어렵다. 더구나 힘을 가진 자일수록 더 어렵다.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사과까지 하라니, 그건 신성모독이다. 무지무능한 개돼지들의 발악을 다 들어줘야 한단 말이냐.

이런 연유로 세상에는 또 역사에는 괜찮은 지도자가 드물게 된다. 지도자가 되려면 일단 권력의지를 품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해야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초식동물 사슴도 발정기에는 내 유전자를 퍼뜨릴 암컷 쟁탈의 피튀는 투쟁을 하지 않던가. 문제는 권력을 잡은 뒤다. 세상은 힘만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왜냐면, 비록 의지와 능력이 부족해 피지배자가 되긴 했지만, 그 어떤 피지배자들도 지배자의 과도한 권력행사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무능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싫기 때문이다. 나도 인간인데. 억압은 싫단 말이야. 왜 권력 좀 얻었다고 너 맘대로 해. 나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란 말이야. 이 외침은 인간본능이고,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이다.

 

니 맘대로 하지마

너가 힘 센 건 알겠는데, 너 맘대로 하진 마. 이건 정의다. 옳은 것이고 좋은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먹고살만한 나라의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좋은 지도자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는 권력쟁취 의지와 권력 유지(Yuji) 의지가 한 개인 안에서 균형있게 자리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은 자는 지맘대로 하려는 나쁜 놈이기 쉽다. ‘착한 놈은 대개 권력을 잡기가 어렵고, 설사 잡았다 하더라도 착하기만 하고 무능한 놈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더구나 현재 대한민국 같이, 원초적 모순구조를 지닌 채 급변하고 다변화 된 사회에서는 더욱 좋은 지도자 나오기가 어렵다. 한 리더십 안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시에 있어, 모성이 필요할 땐 모성이 나오고, 부성이 필요할 땐 부성이 나오는 그런 리더십이 어디 흔할 것인가. 좀처럼 실수 않는 강한 아버지와, 실수를 하면 금방 미안해 하고 고쳐나가는 어머니를 한 몸에 지닌 사람 말이다.

또 설사 그런 리더십이 있다 해도, 대중이 금방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대중의 조급성 때문인데, 빨리빨리에는 다 뿌리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당한 식민지 경험, 해방공간의 이념적 아노미, 식구끼리 피흘린 한국전쟁의 아픔, 그 기억들이 우리를 아직도 쥐고 흔든다. 이 아픔들이 현재 진행형인 분단체제의 모순을 야기한다.

 

하늘구멍과 칼있으마

게다가, 당하고 산 게 너무 억울해 강한 나라,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그토록 애를 썼건만, 결국 세상은 쌀 아흔 아홉 섬 가진 놈들이 내 한 섬마저 빼앗으려는 횡포와 수탈과 반칙과 차별이 난무한다. 자본주의 체제 모순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게 세상은 핑핑 돌아가고, 1차산업 혁명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4차 혁명이라고 떠들어대니, 너무 어지러워 일단 아무 거나 붙잡고 좀 버텨보자. 그래야 무한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차별로 밀려나는 억울함이라도 안 당하지. 뭣같은 세상, 세상이 이리된 탓을 덮어 씌울 원흉을 찾아내야 분이라도 좀 풀릴 것 같은데, 그 원흉이 조선일보가 말하는 바로 그놈인 것 같다. 원흉 찾기가 어려우면 죄를 뒤집어 쓸 희생양이라도 만들어야지.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이 여기서 온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이제 선진국이 됐다고, K-컬처가 세상을 흔든다고 매스컴은 연일 나팔을 불어대고, 힘없이 밀려난 나는 그 속에서 억울하고 불안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니, 오늘도 나는 국뽕헬조선사이에서 출렁거릴 뿐이다. 이놈이다 싶으면 아니고 그래서 저놈이다 싶으면 더 아니니, 어리석은 생명이 목숨줄 이어가기가 참 구차스럽다.

어떤 카리스마 목사가 자신을 통해야만 구원이 있다 하니, 거기라도 가볼까. 어떤 하늘구멍(천공)’ 도사가 우리를 신천지로 데려다 준다니, 혹시라도 거기에 사람사는 세상이 있을까. 차라리 지구 버스를 내려 메타버스로나 갈까. 아니 아니,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 아닐까.  

 

전인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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