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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호의 인문학 카페]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관한 불편한 진실(2)

최병천의 《좋은 불평등》을 읽고

20230907일 (목) 11:50 입력 20230907일 (목) 11: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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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증가는 환경 변화 때문

 

둘째,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남용 등 3대 적폐가 한국경제 불평등의 주요 원인일까?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남용 등 3대 적폐는 한국경제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 아니다. 물론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남용은 중요한 개혁과제다. 그렇지만 최소한 한국경제 불평등을 움직였던 주요 원인은 아니다. 한국경제 불평등은 1994~2008년에 증가했다. 이 시기는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던 기간에 속한다. 한국경제 불평등은 2008~2010년에 줄어들고, 다시 2015년부터 줄어들고 있다. 이 시기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던 기간에 속한다.

3대 적폐론에 근거하면,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불평등을 확대하는 '적폐 정권'이다. 반면에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불평등을 줄이는 '진보 정권'으로 해석해야만 한다. 이는 우리의 상식에도 배치되고 사실과도 다르다.

한국경제 불평등의 증가는 4대 환경 변화 때문이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경제의 부상, 1997년 외환위기와 부채비율의 급진적 축소, 2001년 중국의 WTO 가입과 한국 대기업의 수출 대박이 불평등 확대의 원인이다.

19877~9월에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고 기업별 노조가 정착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기업별 생산성과 기업 단위 노동조합의 투쟁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대기업일수록 생산성이 더 높았고 지불능력이 더 좋았다. 대기업 노조일수록 전투력도 강했고 더 많은 임금 인상을 쟁취하였다.

대기업 자본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지불능력이 있었는데도 군부독재 덕분에 생산성 상승분만큼 임금 인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1987년 민주노조 운동 이후 대기업 자본은 생산성에 상응하는 임금 인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대기업 노동자들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많은 임금 인상을 이루게 되어, 임금 격차와 임금 불평등이 커지게 된다.

불평등의 관점에서, 1992년 한.중 수교 충격의 핵심은 저기술.노동집약적.수출.제조업 일자리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당시 제조업 전체의 고용 비중은 약 30%였다. 저기술.노동집약적.수출.제조업은 제조업에 국한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이었다. 하지만 서비스업과 자영업을 포함한 전체 취업자 시장에서는 중임금노동자에 해당했다. 1992년 한.중 수교와 중국경제의 부상으로 중임금 일자리가 대규모로 사라졌다. 중임금 일자리가 대규모로 사라졌기 때문에 임금 불평등이 증가하게 되었다.

 

셋째, 민주정부 10년과 보수정부 10년의 정책적 잘못이 불평등을 확대시켰을까?

1990년대 중반 이후 불평등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사회민주당이 집권하던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복지국가도 불평등이 증가했다.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복지국가들도 불평등이 증가했다. 그 이유는 유럽 정치권이 만장일치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서가 아니다. 공산권의 몰락, 공산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산업화 대열 합류, 중국경제의 부상, ICT혁명의 진전, 국제분업 구조의 재편과 글로벌 밸류체인의 심화 등이 작용한 결과다.

오늘날 진보정당의 원형인 민주노동당은 20001월에 창당했다. 민주노동당은 현재의 정의당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의 진보정당과 진보적 시민사회 세력, 진보적 지식인들은 민주정부 10년의 정책적 과오 때문에 불평등이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진보정당의 이러한 비판, 주장, 대안을 수용한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52시간제) 등이 모두 그렇다.

하지만 진보적 열정과 별개로 불평등 발생에 관한 원인 분석이 맞지 않았다. 틀린 분석으로 옳은 처방이 나올 리 없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의 원형은 임금주도성장론이다. 2018년 임금주도성장론에 가까운 정책이 실시되자 불평등이 증가하고 고용 상황이 나빠졌다. 좋은 열정이 곧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좋은 열정을 간직하되, 정확한 분석과 합당한 정책 처방이 더 중요하다.

 

넷째, 불평등을 줄이면 그 자체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까?

그동안의 통념은 불평등 확대는 경제성장에 해롭기에, 윤리적으로 나쁜 것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평등은 나쁜 놈, 나쁜 것이기에 불평등을 때려잡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 된다. 불평등을 줄일수록 경제성장에 이롭다는 주장은 우리의 도덕관념에 호소력을 발휘한다. 전체주의가 개념 그 자체로 나쁜 것처럼, 무찌르자 공산당처럼, 무찌르자 불평등의 관념이 자동적으로 형성된다. 하지만 불평등 확대가 경제성장에 해롭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원론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 불평등의 경우 명확하게 사실이 아니다.

불평등에 대한 직관적 개념은 하층 소득 대비 상층 소득의 격차. 불평등이 증가하는 논리적인 경우의 수는 3가지다. 상층 소득이 상승하는 경우, 하층 소득이 하락하는 경우, 중층 소득자 규모가 작아지는 경우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경제 불평등이 출렁거렸던 역사적 시계열을 추적해보면, 상층, 중층, 하층의 변동은 각기 다른 이유에 의해 작동했다.

상층의 소득 상승은 1987년 민주노조 설립 열풍과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한국 제조업 분야 대기업의 수출 대박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상층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은 예나 지금이나 대기업 노동자들이다.

중층 소득자의 규모가 작아진 이유는 19928월 한중 수교 체결과 중국경제의 부상 때문이었다. 저기술노동집약적제조업을 중심으로, 가성비 경쟁에서 중국에 밀린 한국의 중임금노동자가 큰 타격을 받았다.

하층의 경우 고령화가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고령화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로 작동하는 인구 구조의 변동 때문이다. 고령화가 불평등과 연결되는 메커니즘의 핵심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고령화 비노동(미취업) 소득 상실 빈곤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어르신과 빈곤자에 대한 소득 보장 정책을 강화해왔다. ‘국가의 개입 이후불평등을 보여주는 가처분소득은 경향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불평등의 주요 변인은 수출과 고령화

 

다섯째, 한국경제 불평등은 국내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었을까?

그동안 한국의 진보세력은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 일국적 분석에 과몰입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일국적 분석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 불평등은 일국적 요인에 의해 변동하지 않았다. 한국경제 불평등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분석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경제 불평등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분석은 단순히 해외 이론을 수입하거나 소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경제가 중국경제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한국경제와 세계경제의 관계는 어떠한지, 경제성장과 불평등의 관계는 어떠한지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경제 불평등의 요인을 상층, 중층, 하층으로 분해하면, 상층의 불평등은 수출과 연동된 중국발 불평등요인이 가장 크다.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이 커진다.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하층의 불평등은 고령화발 불평등요인이 가장 크다. 상층 소득은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와 연동해서 움직였고, 하층 소득은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층에 대한 소득 보장 정책과 연동해서 움직였다.

한국경제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2가지 변인을 꼽으라면, 상층 소득은 수출이고 하층 소득은 고령화다.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이 커진다.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고령자가 늘어나면 불평등이 늘어난다. 노인 일자리를 늘리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기초연금 인상 등 고령자에 대한 소득 보장 정책을 강화하면 불평등은 줄어든다.

이처럼 한국경제 불평등에서 가장 중요한 변인은 수출과 고령화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동안 한국경제 불평등의 주요 원인을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이라는 3대 적폐로 알게 됐을까? 그것은 한국 사회운동의 전략전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국내적 요인 분석,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이라는 정치권 책임론은 모두 정부를 비난하기에매우 적절한 프레임이다. 대정부 투쟁 관점에서 매우 유용한 논리구조다. 사회운동 관점에서 볼 때,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도깨비 방망이처럼 사용할 수 있는 논리구조다. 하지만 한국경제 불평등의 실제 현실과는 별 관계가 없다. 원인 분석이 틀렸기에 어느 정부가 집권하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리가 없다. 한국 진보세력의 주장은 애초에 사회과학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운동의 논리에 가깝다.



지인호의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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