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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호의 인문학카페] 대한민국의 세금에 관한 불편한 진실

《장제우의 세금수업》을 읽고

20230922일 (금) 08:4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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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일 ‘전국대학민주동문회 협의회’를 결성할 때 발표하기 위해 직접 쓴 선언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우리에겐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민주화세대는 사랑하는 조국과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서 기꺼이 젊음과 열정을 바치고자 했습니다.
온갖 억압과 불평등에 맞서서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곁에 있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승리하고 이후에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우리 세대의 심장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
일상 속에서 사회 시스템을 바꾸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세상을 멋지고 아름답게 물들이겠다는 젊은 날의 꿈을 기필코 실현해낼 것입니다."

그런데 1987년 이후에 달라진 사회역사적 상황을 평가하는 시각이 각양각색인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보니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그 길은 아마 만들어지기 어려울 듯하다. 예전에 민주화를 목표로 비슷한 길을 걸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도 서로 너무나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로 공통점을 발견하고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장제우의 세금수업》을 다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인식이 다르더라도 '연대'와 '복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고 확신한다. 제일 먼저 정치인들과 지자체장들이 읽어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동대문경찰서, 서대문경찰서, 남대문경찰서, 청량리경찰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구치소. 대학교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끌려갔던 곳들이다. 그 이후 휴학하고 복학한 다음에는 1년 동안 수배자 신세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그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하게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온갖 고통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지나 이제 2020년대가 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그 누구도 그렇다고 답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민주화세대는 물론이고 산업화세대도, 다른 세대도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바대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이어 2027년 다음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듯하다.
법인세와 소득세, 간접세에 대한 오해
도대체 왜 그럴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분석, 해결 방향을 제시한 글들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이 바로 《장제우의 세금수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대기업들한테 법인세를 더 많이 걷으면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가는 데 상당한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지 간접세를 인상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과연 그러할까?

"법인세가 늘거나 주는 것은 스웨덴과 덴마크의 기업 세금에서 보듯 선도, 악도 아니다. 오히려 법인세는 소득세보다 한참 적게 걷히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은 보편 증세를 통해 소득세가 대폭 늘어나야 복지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때 법인세는 도저히 소득세를 따라갈 수 없다. 앞서 보았듯 우수한 삶의 질의 국가들은 소득세가 법인세보다 훨씬 많이 걷힌다. 현재 수준에서 더 늘어봐야 그리 많지 않을 한국의 법인세에 맞추어 소득세를 걷으려는 행태야말로 잘못된 것이다. 이는 소득세에 대한 조세저항을 부추기고 복지발전을 가로막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기업의 세금에 대한 선악 이분법을 버리고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 《장제우의 세금수업》에서

소득세가 법인세보다 훨씬 많이 걷히는 나라들 중에는 국민이 평가하는 삶의 질 최상위 국가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웨덴, 캐나다,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호주 등으로 낮은 삶의 질에 허덕이는 한국이 따라잡아야 하는 나라들이다. 한국의 2018년 GDP를 대입하여 이들 나라 ‘소득세-법인세’를 따져보면 소득세가 법인세보다 최소 110조 원, 최대 380조 원 정도 더 많이 걷힌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법인세보다 소득세가 많으면 문제라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법인세가 많으니 한국 기업의 세금 부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GDP 대비 법인세가 큰 나라는 호주(5.3%), 뉴질랜드(5.1%), 칠레(4.7%), 캐나다(3.7%) 순이고, 한국은 4.5%로 6위에 속한다. 하지만 고용주 사회보험료와 급여세를 합산하는 기업 세금이 더해지면 다들 뒤쪽으로 이동한다. 칠레 4.7% 31위, 뉴질랜드 5.1% 29위, 캐나다 6.25% 25위, 호주 6.7% 23위 등 법인세만 봤을 때와는 다르게 기업이 납부하는 세금이 작아진다. 한국은 법인세가 많기로 6번째인 나라였다가 전체 기업 세금에서는 7.85%로 19번째에 자리한다. 이것만 봐서는 한국은 기업의 세금 부담이 큰 나라가 아니다.
간접세 인상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간접세 인상을 저어하는 한 축은 역진성이고, 다른 한 축은 물가 상승이다. 약간 다른 얘기 같지만, JTBC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비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생생한 해답이 이미 나온 바 있다. 사연은 이러하다. 독일 출연자 다니엘은 노르웨이로 여행을 갔다가 독일보다 비싼 물가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노르웨이 출연자 니콜라이는 노르웨이의 물가가 비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간접세가 25%예요. 세금이 있어서 물가가 비싼데 그 세금으로 다시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 《장제우의 세금수업》에서

한국처럼 간접세를 적게 걷지만 저소득층의 삶이 열악한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간접세를 매우 많이 걷는데도 저소득층의 삶이 양호한 나라들이 존재한다. 노르웨이의 표준 부가가치세 비율은 25%이다. 독일은 19%이고 한국은 10%이다. 이것만 봐서는 저소득층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한국, 다음이 독일, 그다음이 노르웨이여야 한다. 한데 현실은 정반대다. 역진적인 간접세가 많이 걷히고 물가가 치솟으면 서민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져야 할 것 같은데, 정반대의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높은 간접세, 우수한 복지, 높은 삶의 질이 순환하는 복지제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강조한 바대로 세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로 나아가려면 세금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인호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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