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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칼럼] ‘인국공 사태’ 사회적 타협이 필요하다

20200629일 (월) 16:2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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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세요 
함께 사는 세상이요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올 여름은 유례없는 불볕더위가 예상된다고 하니, 벌써 덥다는 기분이다. 코로나는 뿌리가 선뜻 뽑히지 않아 마스크 쓰고 다니려니 더 덥다. 더욱이 이 더위 속에서 북한이 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려니, 그들의 속계산은 필자같은 범부가 짐작도 못하겠지만, 암튼 짜증이 난다. 미국은 대통령과 전직 핵심참모가 서로 상대 탓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고, 그 사안이 우리 민족과 첨예하게 걸린 일이니 더욱 그러하다. 어디 한여름 소나기 같이 한때나마라도 속 시원한 소식은 없나. 하기사 사람 사는 세상이 언제 조용한 적이 있었으랴마는 그래도 우리는 힘모으고 지혜모아 또 살아간다.

공론장이 뜨겁다

여느 때처럼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인국공 사태’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뛰었다. 인국공이 뭐지? 인민공화국 비슷한 발음에 또 북에서 희한한 일을 획책했나 싶어 보니, 그게 아니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말한단다.
사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최근 비정규직인 보안요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된다. 가뜩이나 취업문이 좁은 상황에서 이런 방침이 결정됐다고 하니,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을 위시한 이해당사자들이 공론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기에 여야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초여름 열기를 더하고 있다.
취준생들의 주장은 대체로 이러하다. “비정규직 1천 900여명을 그냥 대통령 공약 한 가지에 근거해 일방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이는 절차의 공정성에 어긋난다. 누구는 놀 꺼 안놀고 잘 꺼 안자며 고생해서 정규직에 들어갔는데, 누구는 그냥 쉽게 정규직이 된다면 이는 룰을 어긴 게 아닌가.” 
또, 다른 비정규직들은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옮겼는데, 보안경비 요원만 공사에서 직고용하는 게 과연 공정하느냐는 얘기도 이들 사이에서 나온다. 일리가 있다. 노력과 능력, 실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공정한 거 맞다. 아니면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고, 사회 질서와 기강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보다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규직 전환이라는 화두가 원칙상 틀렸다고는 못한다 해도, 룰을 넘어타는 방식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 정규직 전환이 꼭 필요하다면 공정성은 해치지 않는 방법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의(正義)란 ‘제 몫 갖기’라 정의(定義)하기도 하니 일리가 있다 하겠다.  

취업문 좁아질까 우려도

게다가 취준생들은 “현재 정규직이 약 1천500명인 공사에 만약 1천 900여명이 새로 정규직에 들어오면, 우리가 공항공사에 취업할 기회가 크게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한다.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 지침을 보면 공공기관은 총액인건비 제도를 적용받는다. 공사 직원이 2배 이상 는다고 총액인건비가 그에 비례해 늘기 어려우니 결국 신규채용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은 근거있는 걱정이다.
청년들 사이에 광탈(光脫-취업 전선에서 빛의 속도로 탈락함), 광탈절(光脫節-서류 면접 전형에서 떨어진 날. 광복절에 빗댐), 호모 인턴스(인턴생활만 반복하는 취준생) 등의 말들이 횡행하는 세태에서 어찌 이들의 이같은 항변을 모른 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같은 청년들이라도 한편에서는 이들의 비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앞의 취준생들 주장은 공기업에 명함이라도 내 볼만한 소위 '명문대'를 나왔거나,  집이 잘 살아 제법 오랫동안 취업문을 두드릴 여유가 있는 자들의 ‘특권적 분노’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입장에 따라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한편, 이들과 또다른 한켠에서는, 이들의 이슈 제기가 정파적 의도성이 깔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보이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3년간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는데 "왜 인천공항만 유독 이슈인지 모르겠다", "상시·안전업무 직접 고용이 이번 정부 공약인 거 몰랐느냐"는 글들도 여럿 인터넷에 올라왔다.
이번 사태를 비판하는 이들은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그 진의를 외면한 채 "청년 일자리 뺏기가 아니다"라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향후 일정 기간 공사의 청년채용 규모를 줄이지 않겠다'든지, '공사법에 사무직렬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명기하겠다'든지 하는 구체적 보완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 가짜뉴스에 속고 있다’는 둥 딴소리만 한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이들은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정부가 진정성 담긴 설명을 해주길 바란다. 정부는 스스로의 정책적  정당성 내지 타당성을 설득력있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내부 갈등도 표출

공사 보안요원들 사이에서도 내부 갈등은 있다. 사실 이번 공사의 방침은 비정규직 1천900명 전부를 정규직 전환하는 게 아니라, 2017년 5월 12일 이전 입사자는 적격심사만 거치면 모두 직고용되지만, 이후 입사자는 다른 일반 지원자들과 함께 공개 경쟁채용 과정을 치러야 한다. 
왜 이날이 기준이 되나. 이날은 취임 사흘이 된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정부의 ‘비정규직 전환’정책 추진 방침을 밝힌 날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이후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기관이나 용역업체 임직원들의 친인척 등이 새롭게 채용됐을 개연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채용 비리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후 채용된 전환대상자들에 대해서는 그 이전 채용자들에 비해 보다 강화된 검증단계를 적용했다”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6월 26일 윤재옥 미래통합당 의원실에 제출한 ‘정규직 전환 관련 채용 비리 방지를 위한 지침’참고) 
일견 수긍도 가지만, 그렇게 무 짜르듯 딱 정한 날짜 기준이 수 백명의 일자리를 그렇게 딱 자른다고 생각하니 좀 석연찮기는 하다. 어떤 근거로 이들의 채용 비리 가능성을 입증할까. 
보안요원 가운데 30~40%는 ‘이후 입사자들’로, 이들은 서류전형과 인성검사, 필기시험과 면접 등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탈락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보안요원 노조 측도 “탈락자의 고용안정 대책 없이 직고용 전환 대책이 나왔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도 가세

곳곳에서 이해관계가 걸려 파문이 일자 정치권도 나섰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853개 공공기관에서 19만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됐는데,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과 증가폭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정부의 비정규직 고용 정책 전반을 비판했다. 오 전 시장은 “공공부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규직화의 수혜는 전체 비정규직의 극히 일부(2.7%)”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비정규직의 임금과 처우를 정규직과 맞춰나가는데 초점을 맞춘 정책”을 주문했다. 정부는 오 전시장의 주장이 통계자료 착시 탓이라 주장하지만, 이 또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도 “인국공 사태 논쟁의 본질은 비정규직 정규화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불공정 정규직화 대 공정한 정규직화’이고, ‘반칙·특혜 대 정의·공정’”이라고 역설했다. 
앞서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게 오히려 불공정"이라며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노동시장이 불공정한 능력주의를 공정하다고 느끼게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같은 김 의원의 주장에 대해 비판자들은 “절차상의 공정, 공정한 룰 적용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룰 자체의 정의 여부를 따지는 건 논점을 흐리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비판이 비난으로 격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왕 공론장에 나온 현안이고, 사회적으로도 한 매듭 풀어야 할 문제다. 국민 각자는 스스로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고, 또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게 정치고, 이런 정치가 형성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이번 사안을 우리 사회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     

전인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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