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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칼럼> 당신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입니다

20210705일 (월) 10: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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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세요

함께사는 세상이요~

 

인생이란 만남과 사건의 연속이다. 사노라면 오만 사람을 만나고, 오만 일을 다 겪게 된다. 일단 만남부터 보자. 인생사 거의 모든 게 이 만남에서 비롯된다. 만남은 그 어떤 만남도 똑같은 게 없다. 부모형제, 배우자, 자식, 친구, 직장동료는 물론 지나가다 옷깃을 스치는 사람도 내 인생에 이런저런 흔적을 남긴다. 내가 어쩌다 저런 사람을 만나 이 지경이 됐나. 아니면,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저처럼 고운 이를 만났을까. 우리의 모든 만남은 이 둘 사이 어디쯤에 자리한다.

모든 만남은 사건을 낳는다. 큰일, 작은일, 금방 잊혀질 일, 평생을 갈 일 등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의 점철이 인생이다. 그런데 간혹 삶에서는, 만남과는 직접 관련이 없어보이는 우연한 일도 일어난다. 그런 일일수록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더 강력해, 우리는 삶의 행로에서 방향을 잃기도 한다. , 그때 그런 일만 안 일어났다면. 왜 하필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산다는 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사유가 삶을 다 포착할 수는 없다지 않는가.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리 생각할 수도 있다. “다 알면 무슨 재민가.” 급변하는 세상, 이젠 기억 저편의 일이지만 한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타타타라는 노래가 있었다. 첫 소절이 이랬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그래도 우리는 알고 싶고, 다는 몰라도 일정 부분 알아야 한다.

 

등정이냐 사막건너기냐

그 일환으로 사람들은 인생을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성공지향적 사회에서는 인생을 높은 산 오르기로 곧잘 묘사한다. 어떤 길을 택하든 산꼭대기를 정복해서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해야 잘 산 삶이라고 강변한다. 일견 인생은 생존경쟁이고, 그 경쟁에서의 승리와 우월감 성취감 인정욕구 등도 삶의 중요한 계기인지라 성공이라는 가치도 의미있다.

하지만 낮은 산이나마 몇 개의 산을 넘어 본 이들은 또다른 모델을 제시한다. 인생은 사막 건너기라고. 태양은 이글거리고, 모래바람이 길을 지우고, 목은 타들어가고, 오아시스는 아득하다. 저 멀리 신기루에 몇 번을 속았던가. 건너고 또 건너도 사하라사막, 막막하기만 하다. 그밖에도 이런저런 인생론들이 우리를 설득하고 위로하고 삶의 한 가운데로 우리를 내몬다.

그 인생론들의 대부분은 인생을 상당 시간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물론 젊은이라도 감수성이 탁월한 이라면 제나름 한 편의 인생론을 얼마든지 쓰겠지만, 그래도 살아본 사람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싶다. 물론 그만큼 그의 인생론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사람은 일정 부분 있게 마련이고, 사람은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땅을 하며 살아간다. 그 공감은 타고난 기질과 성향, 그리고 각자의 인생여정이 겹치는 정도만큼 일어난다. , 이 사람 이야기 맘에 드네. 어쩜 이 사람 인생이 나하고 이리도 비슷할까. 그래 맞아, 인생은 그런 거야. 그래 그랬구나. 그러니 나도 힘껏 살아봐야지.

 

인생의 갈림길에서

삶을 길로 보는 건 아주 적실하다. 그게 뱃길이건 뭍길이건 사막이든 산넘어 산이든. 그런데 그 인생길이 참 오묘하다. 우선, 그 길은 갈래가 너무 많다. 걸음걸음마다 갈랫길이 나타난다. 어느 길을 가야 좋을지 막막하기 일쑤다. 이 길인가 싶어 갔는데 아니기도 하고, 저 길은 아니지 싶었는데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다. 그래서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 하는데, 사실 이는 후회가 아니라 미련이다. 가지 않은 그 길을 갔다고 꼭 좋았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건 후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련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지 싶다.

암튼 선택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앞선 사람이 이미 간 길,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따라간다. 모르면 남 하는대로 해야지. 이미 난 길을 벗어나면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괜히 사서 고생할 일이 뭐 있으랴.

하지만 이런 견지는 인생을 멀리서 본 경우다. 남의 인생을 본 경우다. 사람은 객관적으로보다는 주관적으로 산다.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을 돌아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각자가 살아온 길이 하나도 같은 길이 없듯, 앞으로 살아갈 길도 엄연히 그러하다. 선택은 내가 한다. 결국 혼자 와서 혼자 걷다 혼자 가는 길. 그 누구든 같이 갈 순 있지만, 그 누구도 대신할 순 없는 길. 아무도 앞길을 장담할 수 없는 길.

 

꽃길과 자갈밭길

이것만이 아니다. 내가 현명해서 꽃길로 접어들었고, 또 열심히 그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푹 꺼지고 길이 끊어지기도 한다. 아니면 그 맑던 하늘에 천둥번개가 일더니 꽃들이 다 흩날아 가버렸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내가 뭘 잘못했다구.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사는 거 참 힘든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뭐, 하늘의 조화 속이니 사람이 어쩌겠는가. 운명이라 생각하고 겨우겨우 돌풍을 지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힘있는 자들이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시키는대로 해야한다고, 너의 길을 가면 안된다고. 고집부리면 잡아간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내가 왜 그래야 하죠? 그냥 그러기로 자기들끼리 결정했단다. 그리고 딴 길을 제시하는데, 내 마음에 안드는 건 고사하고 통행료까지 내라니. 미치고 환장하겠다. 하지만 어쩌냐 힘이 없는 걸.

하지만 이번에도 참았다. 그런데 이건 못참아. 글쎄 힘겨운 인생길 같이 손잡고 가기로 굳게 약속한 친구가 알고보니 내 길 앞에 함정을 파놓았네. 그것도 자기만 살겠다고. 속이 상할대로 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다른 이들도 나같이 속터지게 사는지. 그래서 옆길을 슬쩍 훔쳐보았다. 그런데 웬걸. 별것 아닌 것 같았던 저 친구가 나를 앞질러 씽씽 달려가네. 그것도 꽃길만. 원래 머리 좋은 금수저란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불평등에, 운동장마저 기울어진 사회불평등까지 내몫이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닌데. 세상 참 치사하다.

 

그 힘은 어디서 왔을까

세상 확 바꿔버리고 싶지만 힘이 없다. 내 더러워서 너그랑은 안산다고 악을 써봤자 나만 손해다. 만남과 사건들로 점철되는 인생길, 험하고도 아득하다. 물론 사람이 항상 가시밭길인 건 아니다. 나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고, 아직 희망도 남았다. 힘없고 돈없고 보잘것 없는 삶이었을지라도 지금까지는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힘은 어디서 났을까.

아마 가장 큰 힘은 사랑에서 왔을 것이다. 사랑, 참 식상하는 말이지만, 그래서 그 이름을 뭐라 부르든, 삶에 있어 사랑의 향기는 항상 정답이다. 가만히 되짚어 보자. 늘 곁에 있어 잘 몰랐지만, 이 못난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식.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했어도 늘 내자식 최고로 아시는 부모님. 비단 혈육 뿐 아니라 인생길 동반하는 의리의 친구들. 믿고 따르는 선배, 사람 괜찮은 후배, 존경하는 멘토 등등. 결국 누가 됐든 내편인 사람들. 그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그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만나는 곳에 생명의 힘이 샘물 솟아나듯 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때로는 갈등하고 서운한 적도 있었지만 그이들은 내 삶의 원천이다.

 

주고받는 사랑의 힘

이런 사랑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사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다. 남이 주는 사랑도 내 안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될 때 사랑이 된다. 이처럼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는 말도 이런 연유다. 굳이 누가 먼저냐를 따지는 건 의미없다. 다만 나의 삶에 사랑이 부족할 때,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옆사람을 사랑해버리는 마음자세가 관건이다. 사랑은 기다리면 오지 않는다. 먼저 주면 받는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였기에 더 행복할 수 있었다고, 사랑의 시인은 노래했다.

암튼 받든 주든 결국 사랑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될 때, 나는 진정 삶다운 삶을 살게 된다. 인생길 비유로 풀어도 그러하다. 인생길을 외부의 길로만 여기진 말자. 그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마음길도 따로 있다. 따져보면, 그 어떤 인생이 꽃길만 걸어가리오. 누구든 가다보면 고속도로도 만나고 흙탕길도 만난다. 또 그 어떤 길도 끝이 있다. 그러니 그 길만 보지 말고 그 길을 가는 자동차도 보자.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자동차가 꽤 쓸만한 차임을 믿는 것을 말한다. 그 누구도 지금껏 살아왔다면 삶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더 잘 살려는 노력이야 당연하지만 지금의 당신도 참 괜찮다. 자꾸 남의 인생을 기웃거리니 자신의 괜찮음이 잘 안보이는 거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잘 살것이다. 지나온 길이 그걸 증명한다. 자신을 긍정하라.

 

자신을 사랑하는가

사실 인생길에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없진 않겠지만 결국 내 인생길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외부에서 만들어준 길이 지나치게 좋았다가는 과속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추락한 차는 자신보다는 길을 더 사랑한 탓이다. 물론 길이 너무 엉망이라도 좌절할 우려가 있다. 내 길은 왜 온통 자갈길이야. 그러나 그런 길을 원망하는 에너지를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최종 승리자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요, 자신긍정은 자신믿음이다. 자신믿음을 자신감이라 하는데, 이는 대범함으로 드러난다. 그러니 외쳐보자. 길 비켜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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