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대메뉴로 바로가기 서브메뉴로 바로가기

[인물의 향기] 한국 문단의 괴짜 시인, 김관식

19년 연상인 서정주를 ‘서 군’이라고 외쳐

20200405일 (일) 11:52 입력

  • 축소
  • 확대
  • 이메일 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보내기
  • 트위터 보내기

천상병, 고은과 함께 3대 기인으로 불려

 

명함에 대한민국 김관식이라고 새겨서 가지고 다녔으며, 술에 취하면 자신보다 각각 19, 21년 연상인 서정주와 김동리를 서 군’, ‘김 군이라고 외치던 김관식. 허무를 견디지 못해 바닷물에 빠져 죽으려고 허리에 돌멩이까지 두르고 제주행 배를 탔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술이나 실컷 먹고 죽자며 술을 마시다 취해버리는 바람에 죽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제주도에 닿아 뜻하지 않게 살아버리고 말았던 고은. 사람들은 천상병과 함께 이들을 한국 문단의 3대 기인이라고 불렀다.

 

 

<사진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상병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시를 사랑하고 술을 무척 좋아했던 김관식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며 시 1천 수를 줄줄 외웠던 김관식은 한학에도 밝아 시의 세계가 깊고 그윽하다는 평을 들었다. 육당 최남선이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김관식은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히고 성리학과 동양학을 배웠다. 1968년에는 사서삼경중 가장 어렵다는 서경을 완역 출판했다. 한학자로서 뛰어난 한문 실력을 발휘했던 김관식은 문단에서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괴짜 시인으로 통했다.

 

김관식은 17세 때 현대문학추천을 받기 위해 미당 서정주의 집에 드나들었다. 어느 날 미당의 처제 방옥례를 본 김관식은 첫눈에 반해 청혼한다. 은행원이었던 방옥례는 처음에 김관식의 청혼을 거절했으나 3년 동안의 끈질긴 구애와 결혼해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결혼에 응한다. 195411일 최남선의 주례로 부부가 됐을 때 김관식은 스물, 방옥례는 스물넷이었다.

 

김관식은 스무 살 때부터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다른 과목은 모두 낙제점인 학생에게 그가 가르치던 국어 점수만은 99점을 준 적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교장이 그를 불러 이유를 따지고 선생의 자율적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자 그는 말없이 학교 앞 텃밭으로 가서 무를 몇 개 뽑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이윽고 크게 취한 김관식은 교장실로 주저 없이 걸어가 교장이 집무하는 탁자 위에다 구토물을 쏟아 놓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부라리며 외친다. “일찍이 내 양심에 벗어나는 일을 나는 한 적이 없소. 그런 나에게 이런 모욕을…….” 기가 질린 교장은 이후 김관식의 결정에 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무를 안주 삼은 이유는 그걸 먹고 토하면 냄새가 아주 지독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란다.

 

김관식은 자신의 나이를 열 살이나 올려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사석이나 술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쓴 책의 약력 소개란에도 그는 1934년인 출생연도를 1924년이라 적었다. 그는 당시 문단에서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는 평론가 조연현과 백철 등에게 반말을 쓴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1960년대 초반 월탄 박종화가 참가한 문학상 시상식에서 월탄의 축사가 길어지자 어이, 박 군 자네 이야기가 너무 길어. 나도 한마디 하겠으니 이제 그만 내려오지.”라고 큰 소리로 외쳐 시상식장을 일순간 긴장과 웃음이 교차하게 한 일은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후배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존칭을 썼고, 자신이 가난한데도 더 가난한 후배 시인들을 챙기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늘 자기의 나이를 10년씩이나 올려 말해

 

한번은 괴짜 시인들이 명동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해후하였다. 김관식, 천상병, 이현우, 한하운이 만났다. 한국문단의 2대 기인과 거지 시인, 문둥이 시인이 만난 것이다. 그들은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왁자지껄하게 술을 퍼마셨다. 술이 오르자 김관식은 장단에 맞추어 변강쇠타령을 불렀다. 이현우는 장타령, 품바타령을 했다. 천상병은 음치 중에 음치였다. 그러면서도 동요를 유치원 원생처럼 천진난만하게 불러 사람들을 웃겼다.

 

야 문둥이, 니좀 해보라니께.”

 

김관식이 한하운에게 노래하라고 재촉했다. 한하운은 <신라의 달밤><솔베지 송>을 멋들어지게 열창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김관식이 말했다.

 

!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더니, 문둥이 주제에 노래는 기맥히게 잘한다니께. 니가 문둥이 됐기가 다행이지 안 그러면 숱한 여자들을 울렸을 것이여, 문둥이 된 게 잘됐다니께.”

, 이 문디 자슥 고마 시끄럽다. 니는 뭐이 잘났노. 생긴 것이 꼭 소도둑놈처럼 생겨갖고 천둥에 도깨비 날뛰듯 해쌌노.”

, 상병이 너 증말로 말 다한겨? 내사 얼굴은 관옥 같고 풍채는 두목지여. 늬들 메주덩이와는 달라도 한참 달라. 그런데 내 거튼 미남더러 뭐이 어쩌고 어째?”

문디 자슥 지랄하고 자빠졌네. 니까짓 게 미남이여? 삶은 개대가리가 웃겄다.”

상병이 니 내가 성님두 한창 성님인디 그게 뭔 말버릇이여, 당장 취소혀. 안 그러면 내가 당장 버릇을 갈쳐놀 텡께…….”

이거 왜들 이러시오, 존 술 먹고…….”

야아, 문디 니는 가만 있거라.”

자꾸만 문둥이 문둥이 하고 입에 올리지 마쇼.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

한하운이 쀼루퉁한 소리를 내뱉자 이현우가 한하운에게 말했다.

보라꼬 하운이, 우리 경상도에서는 문디라카는기 알고보모 욕이 아잉기라. 요즘 말로 옮기자면…….”

거지 주제에 아는 체하지 마.”

문둥아, 니 시 한 수 읊어봐라. 느네 큰 성님헌티.”

김관식은 늘 자기의 나이를 10년씩이나 올려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하운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아래였지만 형님으로 자처하는 것이었다.

관식이 니 돈은 있나?”

거지인 이현우가 물었다.

거지 새낀 오나가나 티를 낸다니께. 술맛 떨어지게. 말이믄 돈이고, 돈이면 술이지…….”

 

곤드레만드레 마시다가 먼저 천상병이 소변본다고 들락거리더니 안 돌아왔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꽥꽥 소리를 지르던 김관식도 밖으로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한하운은 주머니를 몽땅 털었으나 술값이 모자랐다. 단골집이라서 외상을 했다. 이현우는 먹다가 남은 순대며 술병들을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싸서 넣더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디론가 꼬리를 감추었다.

 

신경림 시인이 못난 놈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에서 밝힌 김관식의 일화도 흥미롭다.

내가 김관식 시인을 따라다니다가 아주 난처한 꼴을 당한 일이 한 번 더 있다. 서울서 맞는 첫 설이었다. 역시 그날은 내가 그를 찾아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침 잘 왔다면서 함께 세배를 가자고 했다.

 

첫 행선지를 조지훈 시인 댁으로 정한 것도 그였다. ‘미당 선생은 내 형님이지만 첫 세배를 미당한테야 할 수 없지. 지훈 선생한테 먼저 가야지.’ 한학에 조예가 깊은 그는 본디 지조를 가장 높은 덕목으로 쳤던 터였다. 이렇게 해서 성북동의 지훈 시인 댁에 가서 밤늦도록 술을 마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이 문제였다. 마포의 서정주 시인 댁으로 옮겨 가기 위해서 나와 보니 눈이 발목을 덮을 만큼 쌓여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그는 양말 발이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오는 줄 알고 신을 벗었는데 아직도 택시 속이구먼.’ 택시를 타면서 신을 눈 위에 벗어 놓고 올라온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미당 댁에 세배를 드리고 술 한 잔을 하게 되었는데 김 시인이 양말이 젖은 이유를 설명하자 미당이 술 좀 작작하라고 타일렀던 것 같다. 이 말에 비위가 상한 그가 삐딱하게 나갔다. ‘첫 세배를 형님한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행적으로 보아서도 말이지요. 그래서 지훈 선생한테 먼저 세배하고 오는 길입니다.’ 막걸리가 담긴 술 주전자가 날아와 그의 머리를 갈겼다. ‘이놈을 당장 개똥 떠다 버리듯 삽으로 떠다 버리거라.’ 미당은 노발대발했다. 그리고 내게도 충고를 잊지 않았다. ‘미친놈 따라다니다가는 똑같은 미친놈 되니까 저런 놈은 아예 상종을 말게.’ 그래도 미당이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해 여름 나는 그의 집에서 나와 시장 가까이에 사글셋방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동부인해서 닭이나 과일을 사 들고 병석에 누워 있는 김관식 시인을 찾아가는 미당을 두어 번 본 일이 있다.”

 

술로 병을 얻은 김관식은 1970830, 서른일곱의 나이에 요절했다.

 

- 지인호 문화평론가



지역 칼럼
  • 이전
    이전기사
    [인물의 향기]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